“무턱대고 ‘잘 먹고 잘 살자’…70년대 선거판 보듯” | |||||||||
입력: 2007년 12월 04일 18:33:10 | |||||||||
-경향신문 대선보도 자문위원 좌담회- 경향신문은 지난 2일 회의실에서 대선보도 자문위원 좌담회를 갖고, 이번 대통령 선거의 특징과 문제점 및 대안을 논의했다. 성장주의 일변도의 경제이슈, 정책논쟁의 실종, 언론의 편향적 보도, 검찰 수사권의 향방에 의존하는 대선 상황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선거가 2주일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도 누가 후보가 될지 모르는 이상한 선거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좌담회에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김성훈 경실련 공동대표, 임혁백 좋은정책포럼 공동대표·고려대 교수, 이정우 경북대 교수가 참여했다. 사회(이대근 정치·국제 에디터)=이번 대선의 특징과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김성훈 경실련 대표(이하 김성훈)=임교수의 분석에 대체로 공감한다. 이번 선거에서 2주일여가 남은 지금에서야 정책들이 나오고 있다. 언론도 정책대결이나 차별성을 부각시키지 않고 있다. 또 그것을 나무라는 국민이 없을 만큼 선거에 대해서 희망이나 관심을 잃어가고 있다. 이정우 교수(이하 이정우)=이번 선거는 BBK로 대표된 도덕성 검증에 거의 함몰됐다. 정책이 실종된 선거다. 5년 전엔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비리 문제로 시끄러웠지만, 그래도 그 땐 정책토론을 했다. 당시엔 후보가 일찍 정해지는 바람에 몇 달간 도덕성 검증에 시간을 뺏기고도 정책 검증할 시간이 남았다. 그러나 이번엔 후보가 늦게 정해진 데다 도덕성 문제가 계속 불거져나오면서 정책을 논할 시간이 없어졌다. 그러나 저는 정책보다는 도덕성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아무리 미사여구를 동원하더라고 도덕이 없으면 사상누각이 된다. 얼마 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먼저 인간이 되어라”고 일갈했다. 그 말에 동의하긴 어렵지만, 인간이 먼저고 그 다음에 정책이 있다는 말은 맞다고 생각한다. 박원순 상임이사(이하 박원순)=대선에서는 다음 5년을 이끌어갈 공동체 비전이 제시되고, 다양한 견해들이 함께 오고가면서 차기 대통령을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러한 비전이나 꿈이 전혀 안 나오고 있다. 그리고 유권자들은 주로 고용·일자리 창출 등 경제 문제에만 신경쓰는데 이번 선거에서는 21세기가 요구하는 새로운 시대의 가치를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잘먹고 잘살자’는, 마치 70년대 선거에서 나올 법한 얘기들이 되풀이되고 있다. 사회=선거상황이 불투명하다. 대선을 BBK 수사 결과가 좌우할 수 있는 인상도 주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인가.
이정우=BBK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검찰에 의해 대선이 좌우되는 답답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이 온 것이다. 박원순=정치가 예측가능성이나 안정성 없이 널뛰기를 하는 근본 원인은 평상시에 정치가 제대로 안 돼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 정당정치가 정착돼야 하고 정책, 정강이 미리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그게 안돼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빚어졌다. 대선이라는 과정은 논쟁과 토론을 통해서 자신의 정책을 가다듬고, 그것을 국민과 공유하는 시기다. 이 과정이 생략되면 준비 안 된 대통령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BBK와 관련해 검찰이 수사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과연 엄정하게 수사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그렇게 되면 선거 자체가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임혁백=대통령을 뽑는 데에는 인물의 투명성이 중요하다. 먼저 자질이 되는가를 검증한 뒤 정책검증을 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고 인물검증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그런데 검찰이 사실상 후보의 당락을 손에 쥐고 있는 형상이 돼 버렸다. 시중에서는 우리나라 검찰은 지지도 30%가 넘는 후보는 절대로 기소를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돈다. 사회=정책검증이 안 된 대통령이 선출됐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까에 대한 우려가 있다.
이정우=인물이 정책보다 중요하다. 인물검증을 하고 시간이 남아 정책검증까지 하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되는 이상 인물검증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내가 참여정부 인수위에 2개월가량 있었는데, 그 기간동안 정책을 다듬을 수 있기 때문에 정책검증이 없더라도 큰 문제는 아닐 것 같다. 지금 검찰은 국민들로부터 지탄받고 궁지에 몰려 있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물 수 있다. 검찰이 땅에 떨어진 체면을 살릴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에 확실한 게 있으면, 검찰이 덮고 넘어가기가 어렵지 않을까 본다.
임혁백=모든 후보들이 경제를 이야기 하지만 모두 ‘퍼센티지(%) 성장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진보도 그런 프레임 자체를 깨지 못하고 ’우리도 몇 % 성장을 하겠다’고 나온다. 그러나 오히려 이슈가 돼야 할 것은 사회정책이다. 세계화로 인해 양극화가 심화되고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노인문제가 생기는 등 엄청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21세기로 가겠는가. 김성훈=21세기 화두는 환경의 지속·지탱가능성, 사회의 지탱가능성 등 두 차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의 환경 지탱가능성이 세계에서 136등 수준이다. 대기오염에서 서울은 4년 연속 세계 1위다. 그만큼 환경이 중요한 이슈인데, 한반도 대운하 논의가 반짝하다가 실종됐다. 두 번째로 사회의 지탱가능성 문제다. 자살증가율, 65세 노인들의 자살증가율은 단연 대한민국이 최고다. 교통사고율, 음주사고율, 이혼증가율은 증가하고 각 조직과 기관 내에서 갈등이 심각하다. 이런 것들이 경제와 별개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개발과 환경, 경제와 생태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하지만 대선후보들은 경제를 얘기하면서 GNP 높이는 것만 주장한다. GNP를 국정지표로 운운하는 곳은 지구상에서 우리나라와 러시아뿐이다. 진짜 경제를 살리려면 환경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통해 경제의 지탱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사회=언론의 대선보도 태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그리고 대선 쟁점이 되어야 할 의제가 있다면 무엇인가. 임혁백=보수언론의 편집방향은 의도가 확 드러날 정도다. 이 문제 역시 노정권 언론정책의 책임이 크다. 5년 내내 보수언론과 싸웠고, 기자실도 폐쇄했다. 아무리 나쁜 언론이라도 언론은 언론이고 사회 대표 기능이 있는 것이다. 이정우=언론의 대선보도는 할 이야기가 없다. 보수언론들은 너무나 편파적이라 언론이라 이름 붙이기도 부끄러운 수준이다. 주요한 의제로 부각돼야 할 것은 비정규직이다. 다른 건 몰라도 남은 2주 동안에 후보들이 “나는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풀겠다”하는 것을 심층토론 해야 하고 그게 당락에 영향을 주도록 해야 한다. 박원순=결국은 국민이다. 국민주권제이기 때문에 국민에게 최종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다. 선거가 있다고 해서 완성되는 것은 아니고, 우리 삶의 현장 속에서, 정치과정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김성훈=우리 언론들이 중립과 객관을 가장해 엄청난 ‘몰이 행위’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 영리적 목적뿐이 아니라 정권창출 면에서 몰이 행위를 하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처럼 차라리 어느 후보를 지지한다고 표명하는 게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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