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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재벌 ‘문어발 경영’ 폐해 잊었나

우렛소리 2008. 1. 6. 21:15
재벌 ‘문어발 경영’ 폐해 잊었나
[한겨레   2008-01-06 19:4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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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987년 도입됐던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가 결국 폐지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지난 5일 공정거래위원회의 인수위 업무 보고 뒤 브리핑에서 “출총제를 폐지하고, ‘부채비율 200% 충족’과 ‘비계열 주식 5% 초과 취득 금지’ 조항을 폐지하는 등 지주회사 요건도 완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인수위는 또 해당 부처들의 부정적 견해에도 불구하고 ‘금산분리 완화’를 밀어부칠 태세다. 투자 활성화를 명분으로 지금까지 재벌정책의 뼈대를 흔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경험에 비춰볼 때 이들 정책을 폐지·완화한다고 투자가 살아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재벌 경제’의 폐해만 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 지금도 출자 여력 충분=전경련를 비롯한 경제단체들과 일부 재벌들은 출총제가 투자를 제약하고 있다는 논리를 줄곧 펴왔다. 하지만 지난 11월에 표된 공정위의 ‘2007년 출총제 회사 출자 동향 분석’을 보면, 출총제 때문에 추가 출자가 불가능한 회사는 6조원 규모의 대우건설을 인수한 금호타이어와 금호석유화학 2곳 뿐이다. 출총제 적용을 받는 25개 대기업의 현재 출자 여력은 2007년 4월 현재 37조4천억원. 기존 출자액 14조9천억원의 2.5배나 더 출자할 수 있는 것이다.

 

출총제는 국내 기업의 지분 취득을 순자산의 40% 이내로 제한하는 것일 뿐 설비투자나 사업부 설립을 하는 데는 아무 제한을 두지 않는다. 게다가 각종 예외, 적용 제외 조항들이 있어 동종 또는 밀접한 분야 관련 출자, 사회기반시설(SOC) 법인 출자, 외국인 투자기업 출자 등에는 제약이 없다.

 

한국개발연구원을 비롯한 학계에선 그동안 이런 이유들을 들어 투자와 출총제 사이엔 별 상관관계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기존 사업에서는 출총제가 폐지돼도 투자가 더이상 늘어나기 힘든 상황이며, 출총제를 없앤다고 해서 수익성 있는 신규 사업이 저절로 발견되는 것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 대안 마련은 요원할 듯=외환위기 직후인 98년 2월 국내 기업들이 외국 기업들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를 방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이유로 출총제가 일시 폐지된 적이 있다. 그로부터 불과 3년 사이 대규모 기업집단(재벌)의 순환출자는 16조9천억원에서 45조9천억원으로 급증했다. 3년 사이 3배 가까이로 불어난 것이다. 또 사업을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는 ‘선단식 경영’도 다시 나타났다.

 

서울대 경제학부 이근 교수팀은 최근 펴낸 〈해방 이후 한국 기업의 진화〉에서 “출총제가 한시적으로 폐지되는 시점과 대규모 기업집단의 내부 거래가 급증한 시기가 일치한다”고 밝혔다. 내부거래를 통한 재벌그룹의 경제력 집중 심화 뿐 아니라 순환출자를 통한 재벌 총수의 지배력 강화도 출총제 폐지의 후유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재계 일부에서 “외국에는 출총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외국에는 우리나라의 재벌과 같은 소유 구조도 없다”고 반박한다.

 

인수위는 “필요한 경우 보안 방완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2006년 말 공정거래법 개정 때도 공정위는 출총제를 완화해주는 대신 순환출자 금지를 위한 보완 대책을 넣으려 했으나 재계의 강한 반발에 밀려 무산된 바 있다. 공정위는 출총제가 폐지되면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을 근거로 시행되고 있는 부당 내부거래 조사와 물량 몰아주기 감시 등 사후 제재 수단들도 힘을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경실련의 고계현 정책실장은 “새 정부가 주장하는 ‘선 폐지, 후 보완론’은 결국 출총제 폐지로만 끝나게 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새 정부는 의도와 관계 없이 ‘친기업’이 아니라 ‘친재벌’이란 비판을 듣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