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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건평 씨의 골프채와 보수언론

우렛소리 2008. 2. 27. 17:05
노건평 씨의 골프채와 보수언론
[데일리서프라이즈   2008-02-22 16:00:23] 

1. 짙푸른 잔디밭에서 한 남자가 골프채를 들고, 유유히 걸어가고 있다. 호수까지 있는 호화골프장에서 그는 물에 뜨는 특수 골프공을 쓰면서 샷을 날린다. 바로 대통령의 형이다. ☞ 기사 바로가기

2.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촌로는 농사일을 쉴 수가 없다. 한평당 만오천원에서 이만원 받는 잔디농사까지 짓는다. 그가 거닐던 잔디밭은 골프를 즐기기 위한 연습장이 아니라, 그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농사를 짓는 터전이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골프채는 손자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 골프채였고, 물에 뜨는 골프공은 애들 장난감용으로 만들어진 460원짜리였다. 인터뷰를 하는 그의 집은 물이 새고 있었다. ☞ 기사 바로가기

3. 김해의 지역언론인 시사영남매일도 직접 문제가 된 노건평의 ‘잔디밭’을 찾았다. 그리고 주간조선의 보도로 소개된 골프채와 460원짜리 물에 뜨는 ‘특수 골프공’을 직접 취재했다. 시사영남매일 이균성 기자의 기사를 일부 인용한다. “손자의 놀이용 플라스틱 골프채가 고가의 수입골프채로 둔갑되고 거기에 딸린 한개에 460원하는 골프공이 12,000원짜리로 변신하는가 하면 노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가 농가수입을 위해 가꾸어 잔디시설 보수용으로 판매하고 있는 배추밭 딸린 100평 남짓한 잔디 기르는 밭이 개인용 골프장으로 확대, 왜곡되어 보도 된 것 등은 언론으로서는 커다란 부끄러움으로, 인척들에게는 가슴아픈 응어리로 남았다.” 라고 보도했다. ☞ 기사 바로가기

4. 어느 누리꾼은 2번의 사실이 담긴 기사를 읽으며 “억울해서... 펑펑 울었다... 억울해... 억울해...”라는 멘트를 남겼다. ☞ 블로그 바로가기

1번의 사실은 주간조선 이범진 기자가 취재한 내용이고, 2번의 사실은 시사저널 김회권 기자가 취재한 내용이다.

자신의 일도 아니건만 억울함에 눈물이 나더라는 어느 누리꾼의 멘트에 나 역시 부끄러웠다.

대학을 입학하면서부터 내 꿈은 신문기자였다. 학보사에 지원서를 내었다가 떨어지는 바람에 그 생활은 하지 못했지만 동경은 여전했다. 졸업 이후에도 언론사가 아닌 증권사로 첫 직장을 시작했지만, 매년 신문사의 신입기자 모집 공고를 볼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결국 먼길을 돌아와 지금은 기자 명함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저 주간조선의 기사와 억울해 하는 독자의 눈물에 참담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주간조선의 이범진 기자는 숨어서 사진을 찍었고, 노건평 씨에게 어떤 언급도 없이 숨어서 기사를 썼다. 나도 내 명함을 숨기고 싶다.

주간조선의 기사는 기자로서 배우고 싶을 만큼 모범적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문장에 구체적인 현장 묘사가 곁들여진다. 불필요한 감정적 언사도 잘 절제되어 있지만, 충분히 가치판단이 가능하도록 사실관계를 적절하게 나열한다. 함께 실린 두 장의 사진은 한가로운 전원 마을에서 여유롭게 노후생활을 그리는 대통령의 형님이라는 이미지가 물씬 풍겨난다.

단 두 가지만 없을 뿐이다. 사실(fact), 그리고 기자로서 최소한 지켜야 할 자존심. 그래서 주간조선의 기사는 기사가 아니라 악랄한 선동 삐라가 되었다. 신문은 삐라문건을 싣는 매체가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초등학교 때 배웠다.

독자가 기사를 보고, 억울해 한다. 날조된 보도에 언론의 호칭을 붙혀 준다는 것이 억울하고,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마저 무시한 언론에게 우리의 권력이 조롱당하는 것이 억울하고, 왜곡된 펜으로 한 인간의 삶을 난도질하는 잔인한 행패에 대해 그 책임을 온전히 묻지 못한다는 점에서 억울해 한다.

그의 억울함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참으로 억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