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

우렛소리 2008. 6. 16. 01:00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

 

 

 

머리말 
 

공정하게 편파적으로

 '조선일보'만 보는 사람은 대선을 불과 넉 달 앞둔 지금도 민주당 대통령 후보 노무현의 인터뷰 기사를 볼 수 없다. 노무현은 '조선일보'와는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 조선일보를 '한나라당 기관지'로 규정하기 때문이다.앙숙인 정당 기관지와 인터뷰를 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대한민국에서 두번째로 큰 정당 대통령 후보가 발행부수 1위 신문사와 싸우는 것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대통령 될 사람이 특정 신문사와 싸워서야 되겠느냐고 혀를 차는 분들도 있다. 혹시 대통령이 되면 언론을 탄압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민주당 안에도 조선일보와 화해하라고 충고하는 정치인들이 많다.하지만 노무현은 요지부동이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렇게 할 생각이냐는 질문에는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고 한다.

 

그런데 언론과 싸우는 정치인이 노무현만은 아니다.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이회창은 이른바'조중동'과는 잘 지내지만 방송과는 불편한 관계다. 2002년5월 엠비시가 내보낸 국민경선제 시사다큐 프로그램이 노무현을 띄워줬다고 해서 한나라당 소속의원 모두가 엠비씨 토론 프로그램 참가나 인터뷰를 집단적으로 거부한 적도 있다.방송이 정권의 나팔수라고 성토하기도 한다.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이회창보고 언론과 싸우지 말라고 비판하거나 충고하는 사람은 보기 어려우니 말이다.

 

노무현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욕을 먹고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굳이 조선일보와 싸우는 것일까? 유력한 대통령 후보와 자칭 '대한민국 1등신문'의 싸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노무현과 좃선일보는 왜 서로를 싫어할까? 좃선일보는 노무현을 어떻게 공격하고 있으며 노무현은 무슨 힘으로 이 공격을 견딜 수 있을까? 여기에 어떤 사회 정치적 배경이 있으며 이 싸움의 결과는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나는 이 책에서 이런 의문을 해명해보려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 노무현과 조선일보의 싸움에는 대한민국 반세기 동안 지배해온 '앙시엥 레짐 (구체제)'의 목숨이 걸려 있다. 어느 네티즌의 표현을 빌면 우리는 '바스티유감옥'을 부쉈지만 '앙시엥 레즘'을 해체하지는 못했다. 국민은 6월 항쟁을   통해 군부독재를 종식하고 민주화의 문을 여는 데는 성공했지만 강고한 동맹을 맺은 극우언론과 극우정당의 사상적 정치적 지배에서 사회를 전면적으로 해방시키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는 말이다. 조선일보를 상대로 한 노무현의 전쟁은 바로 이 '앙시엥 레즘'의 해체를 겨냥한 것이다. 노무현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무관하게 이 싸움은 그런 정치적 의미을 지닌다.

 

나는 '객관적인 관찰자'가 아니다.나는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은 채 폴리네시아 원주민을 관찰하는 문화인류학자가 아니다.그래서 냉정한 사회학적 정치학적 분석을 원하는 독자에게는 이 책을 권할 생각이 없다. 나는 기계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 '딴지 일보' 김어준 총수가 그 유명한 '대선후보 일망타진 이너뷰'에서 한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는 대단히 편파적이다. 그러나 편파적이 되는 과정은 대단히 공정하다." 공정함이란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다. 나는 '조선일보'와 노무현의 싸움을 재구성하고 평가하는 데 상식과 논리적 정합성이라는 잣대만을 사용했다. '마구만'이라는 아이디로 인터넷신문 프레시안 게시판에 글을 올린 네티즌은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뜻을 표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불공정, 비중립은 두 인물이 같은 행동을 했음에도 '자신의 정치적 비중립성으로 인하여' 다르게 평가하거나, 다른 행동을 했음에도 '같은 원인으로' 같게 평가하는 것이다. 공정하게 편파적인 것이 가장 공정한 것이며, 편파적으로 공정한 것이 가장 편파적인 것이다."

 

 나는 좌우 극단주의를 모두 배격하는 자유주의자로서 극우 언론의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노무현을 응원하다. 설혹 그가 패배하더라도 내가 선 위치에서 그 싸움을 이어나갈 것이다. 민주주의의 가장 무서운 적은 '불관용'이다. 사회적 통합의 가장 무서운 적은 불신과 증오다. '조선일보'는 불관용을 선동하고 불신과 증오를 부추기는 신문이다. 온 국민이 '북괴'에 대한 적개심과 '안보의식'으로 철통같이 무장하고 '강력한 지도자'의 지휘통솔 아래 일사불란하게 살아가는 '멋진 신세계'를 꿈꾼다.

'적과의 화해'를 주장하거나 기성의 질서에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관용을 베풀지 말고 가차없이 격리하고 제거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노무현은 '불관용'과 싸우며 통합과 화해를 추구한다. 그는 '조선일보'가 지향하는 '멋진 신세계'와 어울리지 않는 정치인이다. 둘 사이의 싸움은 필연적이다. 노무현이 대통령의 꿈을 접지 않는 한, 또한 '조선일보'가 '밤의 대통령'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조선일보'의 공격과 노무현의 반격은 끝나지 않는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이 싸움은 그의 임기 내내 계속될 것이다.

 

 나는 노무현과 '조선일보' 가운데 어느 쪽을 응원해야 할지 분명하게 판단하지 못하거나. 어느 쪽인가를 편들면서도 싸움이 벌어진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독자를 위해 이 책을 썼다. 나는 보통의 경우 편 가르기보다는 중용의 도를 지키는 것이 좋다고 믿는다. 그러나 노무현과 '조선일보'의 싸움과 관련해서는 이런 고전적 처세술이 통용되지 않는다. 이것은 상식과 몰상식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을 상식의 편으로 만들고 싶다.

 

 

 

 

                                                                                       

                                                                                          2002년 8월 15일 광복절에 유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