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나는 어린 왕들을 따라갔다 - 김정란

우렛소리 2009. 4. 25. 15:35

나는 어린 왕들을 따라갔다 - 김정란
  글쓴이 : 시인의눈물    날짜 : 09-04-25 09:06   조회 : 263     추천 : 6     경고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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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 왕들을 따라갔다 

 


나는 어린 왕들을 따라갔다. 세상에서는 결코 힘을 가질 가능성이 없는 순결한 왕들을. 그들은 한때 세상에 정착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아이들은 이따금 기대하지 못했던 힘을 얻었다.

 

그러나 세상의 왕들이 그들을 정죄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어린 왕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세상의 왕들은 막강한 마법의 말을 알고 있다. 그들의 이익에 봉사하지 않는 자들은 그 마법을 결코 이겨내지 못한다. 그 마법에 걸리면 없는 잘못도 생겨나고, 있는 잘못도 사라진다.

 

그들은 마법의 말을 세상을 향해 쏟아붓는다. 세상에서 선은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숙고하고 행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의 왕들이 그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도에 따라 발급하는 존재 증명서 같은 것이다.

 

당신이 그들의 이익에 복무하는 자라면, 당신은 아무리 지은 죄가 많아도 선인이며, 당신이 그들의 이익을 거스르는 자라면, 당신은 아무리 선하게 살았어도 악인이다.

 

 

봉하농장에 날아든 철새들 ⓒ 2009.3.6 사람사는 세상


 

잠깐 숨죽이고 있던 그들이 다시 혀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혀 끝에서 독 묻은 채찍들이 나와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한때 그들과 싸우려고 나섰던 사람들은 모두 그 채찍에 맞았다. 어린 왕들은 특히 많이 다쳤다. 세상의 왕들과 그들의 요원들은 집요하고 게다가 뻔뻔하다. 그들은 무적이다.


어린 왕들의 몸이 갈갈이 찢어졌다. 우리는 어린 왕들에 대한 믿음이 힘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잠깐 꿈을 꾸었을 뿐이다. 잠깐의 신기루는 허망하게 사라졌다.


나는 어린 왕들이 세상을 향해 돌아서서 우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여린 몸 위에 생긴 상처에서 진물이 뚝뚝 떨어졌다. 파리들이 달겨들어 그 진물을 빨아먹었다. 그들은 전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어린 왕들은 발을 끌며 세상을 떠났다.


다시는 그들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사막의 경계까지 그들을 따라갔다. 멀리 모래 언덕 뒤로 태양이 금빛으로 번쩍였다. 바람이 불고 모래안개가 뿌옇게 일어났다, 나는 오랫동안 금빛 속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여린 실루엣을 바라보았다.

 

 

화포천의 새벽 ⓒ 2008.10.19 사람사는 세상


 

잠깐 사이에 그들의 실루엣이 문득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진 순간을 내 육체의 눈이 놓쳤다. 그러나 내 내면의 어떤 시력 좋은 다른 눈과 강한 가슴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보았고, 깊이 알고 있었다.

 

그 아이들이 하늘 위로 둥실 떠올랐다는 것을, 그리고 금빛 태양빛 안에서 그들이 그들의 최초의 아름다움을 회복했다는 것을.


나는 세상에서 슬피 운다. 너무 울어서 가슴이 다 문대졌다. 나는 어린 왕들처럼 세상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린 왕들이 언제 돌아올지 나는 알지 못한다. 마법의 혀를 이기지 못하는 한, 세상에 어린 왕들의 자리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눈물은 내 아이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내 눈물은 나의 시이다. 내 아이들은 어미의 눈물과 시를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