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내 머리가 너무 아프다."
"와? 무슨 일 있나?"
"쟈(일리오나) 때문에…"
"와? 노무혀니 때문에?!"
늦잠을 자고 있었다. 자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는 내가 문자 진동에 깬 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이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무시하려다 보낸 사람을 확인하는 순간 잠이 확 깼다. 발신자가 시민광장이라니….
거실에서 속보를 보고 있던 엄마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본다. 일부러 안깨웠는데 어떻게 알았냐며…. 그때부터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나는 가족들 앞에서 우는 일이 없다. 그냥 혼자 골방에서 울고 말지. 나와 오랜동안 냉전 중인 아빠가 쓰러져도 엄마 앞에서는 울지 않았다. 엄마는 내게 섭섭할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나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니, 내가 그분 때문에 엄마 속썩인다고 생각하는 아빠. 일요일에 봉하마을 갔다가 늦어지면 바로 출근할 거랬더니, 알았으니 잘 다녀오라는 엄마. 괜찮냐며 전화온 친구들…. 난 당연히 괜찮지 않다.
언젠가, 그분의 장례식을 상상해 본 일이 있었다.
한... 20년 쯤 뒤. 봉하마을 빈소에 모여앉아 술을 한 잔씩 하고 있겠지. 눈물짓는 사람도 있을테고. 그럼 난 건강하게 천수를 누리셨으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해야지. 그분과의 추억들을 이야기하면서 웃기도 하고... 흉도 좀 보면 어때.
내가 상상했던 건 이런 장면이었지, 지금처럼은 아니었다. 정말 아니다.
평일에 휴가가 생긴 어느 날 선크림을 사들고 봉하마을로 갔다. 퇴임 때 화장을 안하는 게 좋다고 이야기하시는 분이 이걸 바르실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팬서비스가 확실한 분이니 혹시 모른다 싶었다.
"안그래도 선크림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계속 보내주세요. 앞으로 선크림 장사나 할랍니다."
그래도 이렇게 확인까지 해 주시다니.
다음 번엔 자봉을 하러 갔다. 오리 입식행사, 장군차 밭에서 잡초 뽑기를 했다. 그날 기분이 좋으셨는지 먼저 산행을 제안하셨다. 한 줄로 난 숲길을 따라가는데 꼭 아기오리가 엄마오리를 따라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분 바로 뒤를 어렵게 사수했다.
"노짱님"
"예" ('예'와 '야'의 중간 쯤 되는 특유의 발음)
"제가 드린 선크림으로 장사하신다면서요?" (이걸 유머라고... OTL)
"……그게"
"농담이신 거 알아요~ 하하"
무려 그분의 말을 자르고 말았다. 아... 아무리 당황했어도 이건 좀 너무했다 싶다. 그런데... 그 뒤로 옆에서 쫑알쫑알 하는 내 말에 다 대답을 해 주셨다. 그냥 혼잣말처럼 이야기해서 대답 안해 주셔도 그만인데.
그 분은 그런 분이다.
봉하마을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분이 없다는 걸 확인받는 것 같아 싫었다.
그런데... 첨맘님께 울지 마시라는 이야기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시민광장 분들과 함께 한참을 걸어 봉하마을에 도착했다. 급히 산 손수건을 내밀며 울지 마시라는 이야기를 기어이 하고야 만다. 혹여 몸 상하실까 걱정되어 한 말인데, 참 주제넘었구나 싶다. 정신건강을 위해선 우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그래도 고맙다고 이야기해 주셔서 다행이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셨으면, 체력도 없으실 분 붙들고 울 뻔 했는데... 그나마 울지 않고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분이 가시는 마지막 길에 아빠가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았다. 일은 이렇게 한꺼번에 온다. 그분도, 아빠가 아니어도 요즘 나는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엄마를 좀 쉬게 하려고 주말 동안 아빠 간병은 내가 하겠다고 먼저 이야기 했다. 아빠는 아마 내가 화를 풀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나쁜 딸이다.
"유시미니는 요새 뭐하노?"
다른 질문엔 대답이 없었는데, 이 질문에는 대답해줄 거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그분이 이야기하셨던... 정치하지 말라는 말이 머리를 맴돈다.
그저 몇 표, 후원금 얼마로 내가 할 수 있는만큼 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일지 모른다. 그래도 어려운 길을 가 달라고 이야기해도 될까... 어쩌면 나는 말리고 싶은 마음이 더 큰 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오지랖이겠지만...
수요일엔 아빠가 퇴원을 한다.
개혁도 건강해야 볼 수 있는 거겠지. 다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서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나야 할텐데. 특히나 요즘 들어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된 분들이 다시 금연을 하셨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아픈 걸 보면서 본인의 건강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요즘엔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그런지 잠이 오지 않는다. 잠을 자지 않으니 멍한 상태가 되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오늘도 2시간밖에 못자겠구나. 잠을 자야 뻘짓이 줄어들텐데 걱정이다. 내일은 꼭 일찍 자야지...
그분은 이 새벽에 뭘 하고 계실까.
심심하면 제 꿈에 한 번만 나와 주세요.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