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을 돌아보다... 5년의 고군분투가 남긴 것
- 우일신 ils*** 09.08.06 09:21
정책 대안이라고 하면 마치 이제껏 단 한 번도 현실 세계에 존재한 적 없는 기발한 정책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게다가 설사 전혀 새로운 정책이 제안된들 원하는 목표를 얻기까지는 현실의 무수한 장벽들을 뛰어넘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정말 중요한 것은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할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이번에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돌아보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참여정부는 5년의 임기 동안 모두 십여 차례의 크고 작은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어떤 수를 쓰든 부동산투기를 잡겠다”던 대통령의 굳은 의지와는 달리 5년간 전국의 집값은 35%가 올랐고, 서울은 43%, 신도시는 무려 56%가 올랐다(뉴시스, 2008.2.22).
그렇다면 참여정부가 임기 내내 온힘을 쏟아 부으며 치른 부동산과의 전쟁은 왜 그토록 허망하게 끝났을까. 정책의 한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다음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참여정부의 굵직한 부동산 정책들을 모아보았다.
2003년
▲ 5.23 주택가격안정대책
- 분양권 전매금지 수도권 전역, 충청권 일부로 확대
- 투기지역내 주상복합, 조합아파트 분양권 전매금지
- 수도권 전역 투기과열지구 지정
▲ 9.5 재건축시장 안정대책
- 재건축 중소형 60% 건설 의무화
- 1가구1주택 양도세 비과세 요건 강화
▲ 10.29 부동산종합대책
- 종합부동산세 시행 시기 2005년으로 단축(보유세 강화)
- 1세대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강화
- 투기지역 LTV(주택담보인정비율) 40%로 하향
- 장기공공임대주택 150만호 건설 추진
- 판교·화성·김포·파주 등 4개 신도시 19만호 공급
- 투기과열지구 6대 광역시와 도청소재지로 확대, 분양권 전매금지
- 재건축아파트 개발이익 환수
- 주택거래허가제 도입, 토지거래허가면적 강화
2005년
▲ 2.17 판교 신도시 투기방지대책
- 재건축 개발환수제 등 재건축 대책
- 채권입찰제 실시
- 청약통장 불법거래행위 현장 집중단속
- 강남 등 6개 주택거래신고지역 신고실태 조사
- 판교 일괄 분양 등 판교 투기방지 대책
▲ 5.4 부동산대책
- 부동산 보유세율 단계적 강화
- 1가구 2주택자 양도소득세 실가과세
▲ 8.31 부동산종합대책
- 종합부동산세 과세대항 9억 원에서 6억 원으로 확대ㆍ강화
- 1가구 2주택 양도세 50% 중과
- 실거래가 등기부 기재
2006년
▲ 3.30 부동산종합대책
- 투기지역 DTI(총부채상환비율) 40%로 규제
-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 11.15 부동산시장 안정화방안
- 공공택지 주택 12만5000가구 추가 공급
- 신도시 택지개발기간 단축
- 공공택지 주택 분양가 25% 인하
- 총부채상환비율(DTI) 적용 대상 수도권 투기과열지구로 확대
- 서민주택금융 지원 강화
2007년
▲ 1.11 분양가 상한제 전면 확대
- 분양가 상한제 전면 확대
- 수도권과 지반 투기과열지구 내 민간택지에 원가공개제 도입
- 수도권 아파트 전매 제한 확대
- 청약제도 개편(청약가점제 앞당겨 시행)
- 투기지역 내 주택담보대출 1인당 1건 제한
벌써 꽤나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할 것이다. 굵직한 것들만 짚어보면, 종합부동산세 도입으로 대표되는 보유세 강화(세제 개혁), LTV와 DTI 등 금융 규제 장치 도입, 분양권 전매 금지, 분양가 상한제와 분양원가 공개제 도입, 재건축 개발이익 환수장치 정비, 서민용 장기임대주택 공급 등이 있다. 당장 실현 가능한 거의 모든 정책 수단들을 동원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 가운데 세제 개혁과 금융 규제를 대표하는 두 가지 대표적인 정책들에 대해서만 간략히 소개해보겠다.
▶ 종합부동산세... 보유세 강화 통한 강력한 불로소득 환수 장치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상징처럼 돼버린 종합부동산세 도입은 거래세나 양도세가 아닌 보유세를 강화하는 정책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세금을 통해 부동산 투기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불로소득을 흡수하려는 정책이자, 부동산 소유 그 자체가 부담이 되도록 한다는 점에서 강력한 효과를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 LTV와 DTI... MB도 인정할 수밖에 없던 탁월한 금융 규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비롯한 모든 투기와 거품의 배후에는 금융(대출)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LTV(주택담보인정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라는 금융 규제 장치의 도입은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짚은 정책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는 미국과 다르다”며 국내 부동산발 위기에 대한 우려를 부정할 수 있었던 데는 사실 참여정부의 공로가 숨어있는 셈이다.
그러나 적어도 수치로 드러난 결과는 암담했다. 앞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참여정부 임기 5년간 분당의 아파트값이 78.44%가 오른 것을 비롯해 강남구는 71.05%, 송파구는 70.96%, 용인시는 68.17%가 올랐다. 특정 지역에서만 나타난 현상도 아니다. 같은 기간 과천, 용산, 성동 등도 높은 상승률을 보였으며 강동구, 광진구, 동작구와 여의도 등 서울시내 주요 지역과 일산, 중동, 산본 등의 아파트 가격도 가파르게 올랐다. 그 뿐이 아니다. 혁신도시, 행복도시 등 정부가 내놓은 각종 개발정책으로 전국 곳곳의 땅값도 뛰었다.
대체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사실 다양한 평가들이 존재한다.
우선, 이른바 ‘개발오적(건설업체, 정치인, 관료, 학자, 보수 언론)’의 두터운 벽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실제로 개발오적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란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종부세 도입을 앞두고 ‘세금 폭탄론’을 제기한 것은 그나마 손에 쥔 과자를 지키려는 투정쯤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DTI 규제를 꺼내들자 ‘서민들은 강남에 집을 사지 말라는 얘기냐’며 투기를 부추기는 주장도 서슴지 않았던 것이 바로 이들 개발오적들이다. 거품이 끝없이 부풀어 오를 거라며 가난한 이들에게 대출을 부추긴 결과가 바로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였음을 생각하면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는 대목이다.
상황이 이런 탓에 정부는 매번 여론과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느라 기회를 놓치거나 한 발 한 발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고 결국 굵직한 정책들이 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나 비단 부동산 정책뿐만이 아닌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대부분의 개혁 정책들이 기존 관료와 재벌, 보수 언론의 공고한 커넥션을 넘어서지 못해 좌초했다고 보면 이는 부동산 정책에 대한 평가로서는 부족하다.
조금 더 쓴 평가도 있다. 지나친 개발 정책, 공급 정책으로 참여정부 스스로 부동산 거품을 키웠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그 동안 신도시 계획을 발표할 때마다 집값이 폭등했다. 거품이 빠지려고 할 때마다 신도시를 발표해서 거품 붕괴를 인위적으로 막아왔던 게 정부다.”(경실련 아파트값거품빼기 운동본부 김헌동 본부장,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2007.5.25)
당시 정부는 부동산 가격 폭등의 진원지를 강남으로 보고 판교 신도시를 비롯해 강남으로 몰린 수요를 대신할 ‘제2 강남’ 건설을 추진한 바 있다. 그러나 판교, 송파, 검단 신도시 등의 건설 계획이 발표될 때마다 오히려 정부의 예상을 비웃듯 주변 시세는 폭등했다는 것이 김 본부장의 설명이다. 결국 정부가 문제의 원인을 잘못 짚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문제의 정확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김병권 부원장은 부동산 문제도 본질에 있어서는 ‘금융 문제’라고 지적한다.
“보유세 강화가 불로소득의 환수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조세 정책으로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는 발상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2006년 말에 DTI 규제를 강화한 뒤 2007년 초에야 비로소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초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이 맞물려 부동산 시장이 폭발 조짐을 보이던 2003~4년에 곧바로 강도 높은 금융 규제(DTI, LTV)를 통해 부동산 투기 열풍이 온 나라로 퍼지는 것을 막았어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 5년간 부동산 가격이 미친 듯이 오른 것은 온 국민이 남의 돈으로 도박판에 뛰어들었기 때문이지 결코 일부 부자들의 투기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가 뒤늦게 보유세 강화를 꺼내들었을 때는 이미 부동산 거품과 함께 온 국민의 욕망이 한껏 부풀어 올라 더 이상 어떠한 처방도 듣지 않는 상황이 돼버린 뒤였고, 결국 지지층마저 등을 돌리고 만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다르게 표현하면 총합으로서의 정책 수단은 훌륭했으나 각각이 상황에 맞게 운용되지 못했다고도 할 수 있다. 정확한 상황 인식과 그에 걸맞는 정확한 정책 운용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뚜렷한 힘과 목표’가 없었다는 평가도 새겨들을 만하다. ‘보유세 강화’라는 정책 방향은 옳았지만 이것이 투기에 장악된 시장 흐름을 바꿀 정도의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뚜렷한 목표가 필요했으나 실제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정부의 요란한 발표에 시장은 반응하지 않았고 이런 과정들이 반복되면서 결국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가령, 정부가 핵심 정책 수단으로 삼은 보유세를 예로 들면, 정부는 현재 선진국의 1/10에 불과한 실효세율 0.15%를 2017년까지 단계적으로 1%까지 끌어올린다는 구상을 세웠으나 이런 정도로는 시장을 움직이기 어렵다.
“2017년 1%는 너무 멀고 미흡하다. 이래서는 정부의 보유세 강화가 제대로 실행될 것이라고 아무도 믿지 않는다. 토지 불로소득 완전 환수를 보유세의 목표로 천명하고, 실효세율 1%를 참여정부 임기 안에 달성하고 장기적으로 3% 정도까지 높여야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다.”(경북대 김윤상 교수, 한겨레21, 2005.6.21, 565호)
물론 단순히 부동산 가격의 상승률만으로 정책 실패라 규정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시장과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 정책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으며, 실제로 임기 말인 2007년 초부터 부동산 가격이 안정을 되찾는 등 서서히 정책 효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세간의 오해와는 달리 대한민국 부동산 정책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토지정의시민연대 이태경 사무처장의 평가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프레시안, 2009.5.27).
그러나 설사 이러한 점을 인정한다고 한들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뒤 너무 많은 정책들이 본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탓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2008년 한 해에만 종부세 완화,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한시적 폐지, 강남 3구를 제외환 투기지역모두 해제(DTI LTV 규제 해제, 분양권 전매 제한 해제), 재건축 소형ㆍ임대 의무비율 완화 등 가히 ‘규제 완화의 전성시대’라 불릴만한 조치들이 취해졌다. 물론 그 배경에는 ‘경제 위기 극복’이라는 명분이 자리하고 있다.
이상으로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되짚어보았다. 실패의 원인을 찾는 것만큼 고역스런 작업이 또 있을까. 그러나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쯤은 감내해야 마땅하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책이나 보고서 안에 가만히 잠들어있는 정책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 속에 던져져 세상과 호흡하는 살아있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정책 그 자체에 대한 평가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상황들이 임기 내내 참여정부를 괴롭혔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정부가 들어선들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죽하면 혁명보다 어려운 것이 개혁이라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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