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무노조의 신화를 원하는가? -진중권-

우렛소리 2016. 6. 17. 17:39
무노조의 신화를 원하는가?
   진중권 / 2004-11-22 / 1255
[시론] 무노조의 신화를 원하는가 /진중권(2004. 11. 22 국제신문)

  어느 보수신문에서 언젠가 노조 때문에 독일 경제가 병들어 간다는 내용의 기사를 썼다. 며칠 후 그 신문에는 독일대사관에서 올린 반론보도문이 실렸다. 독일의 노조는 지극히 정상이며, 외려 강력한 노조를 '경쟁력 우위 요인'으로 꼽고 있다는 것이다. 강력한 노조 덕분에 독일에서는 교섭이 '실질적'으로 진행돼 파업이 길어야 반나절이다.

예전에 독일에 살면서 시내버스 파업을 경험했다. 그곳은 버스도 기차처럼 운행 시간이 정확한데, 차가 안 오는 것이었다. 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다 버스 운전사들이 파업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승객들은 한 마디 불평 없이 조용히 자리를 떴다. 시민에게 투표권이 있듯이, 노동자에게는 파업권이 있다. 타인의 권리 행사에 내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독일에서도 가끔 장기 파업이 일어난다. 대개 임금이 아니라 일자리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경우다. 아무리 노조가 강하나, 어디 사용자를 이기겠는가? 결국 싸움은 노동자들의 패배로 끝났다. 당시 슈뢰더 총리는 친히 노조를 방문해 "비록 패배했지만, 당신들은 어려운 상황에서 정말 훌륭하게 싸웠다"고 치하했다. 우리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노무현 대통령은 언젠가 노동자들 앞에서 "노동자가 악법을 깨는 무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라며 묻고는 "그것은 파업"이라고 말했다. 이해찬 총리는 의원 시절 지금의 공무원 노조에서 제기하는 요구를 거의 수용한 법안을 제출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가 그냥 소설만은 아닌 모양이다. 더 얄미운 것은 유시민 의원. 그는 비아냥댄다. "누가 공무원 되라고 협박했나?" 자발적으로 직업을 가지면 권리 주장도 포기해야 한단 말인가?

정부 비난을 업으로 삼은 보수언론도 이럴 때만은 정권 편이다. 공무원 노조의 파업은 엄연히 사용자와 노동자의 이해관계의 대립이다. 언론이라면 중립을 지키며 양자 주장을 공정하게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중립은커녕, 편파성의 수준을 넘어 아예 '파업에 참가한 공무원을 구속시키라'며 가학적 선동을 하고 있다. 논조의 폭력성이 거의 사디스트 수준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불필요한 폭력이다.

시민 의식에도 문제가 있다. "경제도 어려운데 웬 파업이냐?" 그럼 경제가 좋을 때면 파업해도 되나? "배부른 자들이 무슨 파업이냐?" 그럼 배고픈 노동자는 파업해도 되나? 대기업 노동자는 귀족이라서, 중소기업 노동자는 회사 살려야 하므로, 비정규직은 '노동자'가 아니어서 안된다(?). 도대체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은 그럼 누구를 위한 것이란 말인가?

어차피 우리 대부분은 가진 게 없어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노동자다. 이 존재의 공통성 때문에 동료 시민의 권리가 곧 나의 권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연대'가 필요하다. 연대가 싫으면 최소한 '톨레랑스(관용)'를 갖고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 나아가 공무원 노조가 경제 망치는 주범이라는 유치한 선동에 속지 말고 가령 △비리 척결 △부패 감시 △예산낭비 방지 등의 주장을 '생산력 우위 요인'으로 끌어올릴 생각을 가져야 옳다.

노조의 문제는 노동자를 사회적 대화의 '주체로 인정'하느냐, 아니면 '관리의 대상'으로 간주하느냐에 달려 있다. 법은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부여했다. 그 권리, 노동자를 위한 게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가 원활하게 돌아가라고 부여한 것이다. 그것을 부정하면 합리적 소통은 사라지고 적나라한 폭력의 지배만이 남는다. 도대체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폭력으로 대화를 대신할 것인가? 억누른다고 마음속의 권리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겠는가?

정부는 사법적 강제를, 보수언론은 선동적 논설을, 성난 군중은 감정적 욕설을 퍼붓고 있다. 이거 너무 심하지 않은가? 정부여, 언론이여, 시민이여, 정말 무노조의 신화를 원하는가? 그럼 1930년대 독일로 가라. 거기에 당신들의 유토피아가 있다. 위대한 지도자 히틀러는 언론과 사법과 군중의 폭력을 동원해 독일을 노조 없는 나라로 만들었다. '직 하일(승리 만세)!'


문화평론가 중앙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