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식과 이명박식 영어의 차이점
싱가포르는 영어를 쓴다. 싱가포르가 도시국가여서 영어공용화가 가능했다라든가, 그런 소규모에서도 아주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라든가, 그나마도 백수십년여에 걸친 영국 식민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얘기는 여기서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다.
싱가포르의 공용어는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 등 4개나 된다. 이중에서 영어를 실질적인 진짜 공용어로 만들려고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는 강권을 휘둘렀다. 이런 일까지 있었다.
옛날에 싱가포르에 4년제 대학이 두 개밖에 없었을 적 얘기다. 그 중 하나는 국립대, 또 다른 하나는 사립대였다. 국립대에서는 영어가 공용어였다. 그런데 화교계 사립대학이었던 난양대학이 수업을 중국어로 했다. 리콴유는 영어를 쓰라고 요구했다. 중국계들이 반발했다. 리콴유는 어떻게 했을까?
영어 안 쓰겠다고 저항하는 학교를 폐교시켜버렸다. 그리고 국립대학으로 재개교했다. 지금 우리나라 양대 명문 사립대가 국가의 명령을 안 듣는다고 폐교시켜 국립화할 수 있을까? 참여정부가 내신강화를 ‘요청’했을 때 사립대들은 무시했다. 그때 우리 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폐교는커녕 유의미한 제재도 못했다.
리콴유는 왜 그랬을까? 영어에 한이 맺혔나? 그런데 이상한 건 싱가포르의 국가(國歌)는 말레이어라는 사실이다.
싱가포르는 다민족 국가다. 주요 민족구성은 이렇다. 중국계(77.5%), 말레이계(14.2%), 인도계(7.1%), 그 외 소수민족. 이런 상황에서 중국어를 쓰게 되면 사회 주류인 중국계만 유리하게 된다. 말레이어를 쓰는 말레이계, 타밀어를 쓰는 인도계 아이들은 고등교육 기회를 놓치게 되는 셈이다.
그러자 리콴유는 주류인 중국계의 요구를 무시하고 모두에게 공평히 영어로 평준화시켜버린 것이다. 획일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언어 평준화로도 모자라 중국계 아이들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말레이계에게 대학입학 쿼터까지 제공했다. 기회균등의 원리다. 이런 정책을 통해 다민족 국가인 싱가포르는 내부소요 사태를 방지, 국가통합을 이뤘다. 안정된 사회는 싱가포르의 국가경쟁력으로 연결됐다.
말레이어로 국가를 정했다는 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우리나라는 지금 이주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언젠가 동남아어를 쓰는 인구가 10% 이상이 됐을 때, 우리나라 국가를 동남아어로 바꿀 수 있을까? 싱가포르의 대통령 나단은 인구의 7%밖에 안 되는 인도계 출신이다.
기술적으로 봐도 싱가포르 사람들은 어느 한 언어로는 의사소통하기가 힘들다. 말이 중국어지, 우리가 중국어라고 부르는 언어는 사실 북경어(표준말)에 불과하다. 다른 지방 출신 중국계는 북경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북경어를 쓰는 사람은 중국계 77%중에 일부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한국이 다민족 국가가 됐다. 상층부 주류는 한국어를 쓰는 토종 한국인이다. 나머진 이민족이든, 우리 민족이든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한다. 사실상 한국어가 귀족언어인 상황이다. 이때 국가가 모든 국민으로부터 언어를 몰수해 영어를 평등하게 강제하면, 한국어 쓰는 지배층들은 요즘처럼 만세를 부를까? 이명박 당선인은 이런 상황에서도 영어강화를 외칠까?
싱가포르식 영어와 이명박식 영어의 차이는 전자는 통합과 포용의 영어인데, 후자는 분할과 배제의 영어라는 데 있다. 전자는 시민언어로서의 영어이고 후자는 귀족언어로서의 영어다. 같은 영어지만 그 정치적 맥락이 전혀 다르다.
요즘 지식경쟁력 타령을 하는 것이 유행인데, 국영수 중에 지식경쟁력과 가장 관계가 먼 것이 무엇일까? 영어다. 영어는 외국어에 불과하다. 이건 그냥 단순한 기술이다. 외국어 구사능력은 국가가 잘 가르치면 되는 일이다. 그리고 직업상 외국어가 필요한 사람은 공부하게 되어 있다.
이명박식 영어는 그런 기술로서의 영어가 아니다. 사람을 선발하고 배제하는 평가도구로서의 영어다. 특히 입시에서 영어시험의 중요성을 지금보다도 높이려 하고 있다. 국어, 수학, 그리고 인문이공 경쟁력에 직결되는 사회, 과학보다 영어가 더 중요한 변별지표가 되고 있다. 왜 그럴까?
영어가 가장 효과적인 배제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만약 농어민, 노동자의 자식들이 영어만 구사하고 한국어를 모른다면, 강남부자들이 영어를 모르고 한국어만 사용한다면, 지배층들은 한국어 교육 강화론을 목청 높여 외치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농어민, 노동자의 자식들이 한국어 문법을 마스터하는 날이 오면 한국어 읽기, 듣기 평가 비중을 강화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어 가능자를 군대에서 빼주자고 하는 자들이 나올 것이다. 군대는 영어 쓰는 가난뱅이들만 가라고.
국어는 한국인이니까 한국에서 할 수 있다. 수학은 참고서 달달 외우면 빈부귀천 없이 엇비슷한 성적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영어는 다르다. 농어민, 노동자, 강북민, 지방민, 비정규직, 도시서민, 영세자영업자의 자식들은 절대로 다년간 미국 유학을 다녀온 부잣집 자식들의 영어능력을 따라갈 수 없다. 바로 이것 때문에 평가기제로서의 영어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이다. 부귀를 대물림하고 국민다수를 따돌릴 수 있는 마법의 주문, 영어!
같은 영어라도 싱가포르에서는 사회 안정화에 기여했지만, 이명박식 영어는 한국사회의 내부 불안을 증폭시킬 수밖에 없다. 치솟는 사교육비와 고등교육 기회 박탈에 따른 국민생활 피폐, 양극화는 국민 다수를 천민화해 폭동을 부른다. 대기업노조는 자식을 미국에 보내기 위해 파업을 하고, 일반 노동자들은 시내에 모여 악에 받친 데모를 하게 된다. 농어민은 걸핏하면 상경투쟁을 하게 된다. 한국사회 경쟁력이 떨어지고, 게다가 영어능력만 기이하게 비대화된 한국인은 지식경쟁력이 약화된다.
이상이 이명박식 영어와 싱가포르식 영어의 어처구니없는 차이다. 지배층들이 이렇게 괴상하게 국가를 이끌고도 잘 되는 나라는 본 적이 없다.
출처 : 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72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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