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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 낮으니 속았다’…또 드러난 ‘간판사회’

우렛소리 2009. 1. 10. 15:25

학벌 낮으니 속았다’…또 드러난 ‘간판사회’

 

 

 

한겨레 2009-01-10

 

 

 

[한겨레] 30대·무직·전문대 출신 논란

 

‘미네르바’ 수사를 계기로 ‘학벌 지상주의’라는 한국 사회의 추한 몰골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9일 일부 언론은 박씨의 ‘공고·전문대 졸업’ 학력을 거론하며 ‘돌팔이 의사에게 당한 꼴’이라는 등의 표현을 써가며 그를 원색적으로 비난했고, 전날에 이어 이날도 온라인에는 그의 학벌을 문제삼은 일부 누리꾼들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글 내용 시시비비보다 학력·직업 조롱

뿌리박힌 ‘학벌 지상주의’ 단면 드러내

 

 

미네르바의 학력 등을 두고 벌어지는 논란은 우리 사회에 뿌리박힌 ‘학벌 지상주의’의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개탄했다. ‘변변찮은 학벌에 대한민국이 놀아났다’는 비난과, 그렇기에 ‘진짜 미네르바가 아닐 것’이라는 등의 반응도 ‘학벌 지상주의’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는 지적이다. 미네르바 자신도 자기 글이 주목받게 되자 신빙성을 높이려 미국 근무 경험이 있는 중년의 전문가인 것처럼 경력을 포장했다.

 

이철호 ‘학벌없는사회’ 정책위원장은 “그동안 미네르바의 학력이 높고 외국 경험이 있을 것이라는 세간의 예측이 빗나가자 많은 사람들이 당황하는 것 같다”며 “한 사람의 실체를 겉으로 드러난 ‘간판’으로 예단하는 풍조가 얼마나 뿌리깊게 박혀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영준 경희대 국제경영학부 교수는 ‘30대 무직 비전공자에게 농락당했다’는 해석에 대해 “유명한 과학자들 가운데는 학위 없이도 실험으로 인정받은 이들이 많다”며 “학벌을 바탕에 둔 비난은 우리 사회와 일부 언론이 그런 의식에 너무나 깊게 젖어 있는 탓”이라고 지적했다.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이날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사건을 다룬 기성 매체들은 (미네르바가) 전문대 출신이다, 무직자다 이런 사실들을 주로 보도하고 있는데, (이는) 편견에 기대어서 미네르바를 깎아내리려는 의도”라며 “그에게 열광했던 누리꾼들에 대한 일종의 조롱이 깔려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논쟁은 학벌이나 이력 등 ‘간판’이 아니라 글의 내용, 곧 글의 시시비비를 두고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무직자·비전공자의 글이어서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건 본질을 외면한 접근이라는 것이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인터넷 공간에서 주목받는 글은 ‘누가 썼느냐’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용이 얼마나 많은 공감과 설득력을 얻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며 “학벌 등을 이유로 신빙성을 문제삼는 건 잘못된 접근법”이라고 말했다. 한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는 “‘미네르바’의 주장이 아주 정교한 논리라고 볼 수는 없었지만, 몇 가지 논리들은 현상을 매우 잘 포착했다”며 “그의 이력을 두고 주장 자체를 폄하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이미 정치·사회·문화 등 전방위적으로 전문가들의 지식 권력이 해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네르바’의 학력과 이력을 두고 공격하는 것 자체가 낡은 패러다임의 잔존물”이라며 “오히려 그의 발언보다 신뢰를 얻지 못한 이명박 정부의 경제팀이 신뢰의 위기를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