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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참사로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우렛소리 2009. 2. 6. 22:37
▶◀ [펌]용산참사로 아버지를 잃었습니다(고 윤용헌씨 장남 윤현구).
글쓴이 : 노아-2
출처 : 유시민을 믿고 지지하는 참여시민 네트워크, 시민광장

용산 참사로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싸이월드 / 윤현구 / 2009-02-03)


이번 용산 참사로 인해 아버지를 잃은 올해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아들입니다.

저는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행복을 형체화 시키는데 있어서 대표적인 모습인 오붓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인 사회에서 우리 가족은 하루 만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불법시위? 테러?
10년 넘게 식당을 하시며 수많은 손님들의 침과 땀을 닦은 휴지들을 맨손으로 치워가며 돈 한 푼 아끼기 위해 파출부(종업원=편집자 주)도 안 써가며 단둘이 일하셨던 우리 부모님이십니다. 음식이 맛이 없다. 벌레가 나왔다. 머리카락이 나왔다. 냉정하게 외면하던 손님들에게 등 굽혀 사과하고 진심으로 죄송해하던 우리 아버지였고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고 항상 웃는 얼굴로 장난을 거시며 다음에는 어디로 놀러 가자 저기로 놀러 가자 말씀하셨던 아버지입니다.

함부로 말하지 말아주세요.

비록, 저와 동생은 학교에서 학비를 지원받는 지경이었지만 괜찮았습니다. 아빠와 엄마가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미래를 꿈꿀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화염병? 시너?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술을 마시고 있던 아버지가 울먹이며 했던 말을 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용역이 쳐들어왔어. 근데, 너 같은 또래 나이 애한테 얼굴을 얻어맞았어….'

억 돈을 들여가며 십여 년간 장사를 한 사람들에게는 삼천만 원을 줄 테니 나가라 하고 빚까지 져가며 가게를 내어 장사하던 사람에게는 천만 원을 줄 테니 나가라하고

여러분 같으면 나가시겠습니까? 천만 원이면 단순한 분식집도 차리지 못하는 액수입니다. 저희 가족 같은 경우에는 식당 겸 가정집이었습니다. 돈 천만 원에 식당과 집을 잃게 생긴 것입니다.

집에서 나가지 않는다고 용역들이 장사를 방해했습니다. 손님들이 지나다니는 거리 벽마다 빨갛게 해골들을 그린다거나 밤마다 몰래 가게 유리를 부수고 간다거나 심지어는 이미 비운 집에 방화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아랫집 아저씨가 용역들에게 둘러싸여 맞고 있을 때 누군가가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저희 동네는 중구... 5분 안 되는 거리에는 크고 커다란 서대문 경찰서가 있습니다.

경찰들이 무슨 도움을 주었는지 아시나요? 저 멀리서 구경만 하고 있었습니다. 왜? 안 나간게 죄니까. 용역들은 합법적이다. 라는 말들뿐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겪어 보셨나요? 학교에서 듣지도 보지도 배우지도 못한 상황이 연속적으로 우리 가족, 내 근처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 가족은 그해 겨울 새벽 강제철거를 당했습니다. 기르던 강아지도 강제 이송당했고 사진 앨범 등도 사라졌습니다.

북아현동 높은 위치에 달동네에 열평 남짓한 부동산을 집으로 꾸며 살고 있습니다. 항상 미안하다며, 봄까지만 기다려달라며 전철연 활동을 하셨던 아버지입니다.

아버지가 사건 전날 내게 마지막으로 하시고 갔던 말씀입니다.

'아빠 5일 정도 못 올지도 모르니까 밥 잘 챙겨먹고, 아르바이트 늦지 않게 일찍 자고 엄마랑 잘 있어.'

1월 20일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 영정 사진이 없어서 갓난 나를 업고 있는 사진의 얼굴을 합성하여 영정 사진을 마련했습니다.
시민들에게 화염병을 던졌다구요?

용산 참사 주위 역시 재개발 지역으로 참사 건물 주위에는 주거하는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상태였으며 화염병은 무장한 경찰들이나 도로들을 향해 던졌습니다. 절대 무자비한 테러 마냥 사람들에게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의 아버지를 절대적으로 옹호하지 않습니다.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도 원하시지 않을 것 같으니까요.

저희 다섯 유가족 모두는 지칠 대로 지쳐 있습니다.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 장례식 계획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사건의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며, 확실한 원인과 규명을 밝혀내고 싶을 뿐입니다.

아버지의 시끄럽던 코골이가 이렇게나 그리운 소리가 될지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아버지께 아무것도 해 드린 게 없습니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아버지는 없는 사정에도 내게 새 핸드폰을 사주셨었습니다. 당신께서는 키가 작으셨지만 키가 큰 나를 매일같이 남들에게 자랑하셨던 아버지입니다.

내가 죽어 지옥으로 간다는 조건이 붙는다 해도, 내 삶이 반으로 줄어든다는 조건이 붙는다 해도, 나는 아버지를 만나고 싶습니다. 아르바이트 월급으로 양복도 맞춰 드리고 낚시도 가고 싶습니다.

많이 야윈 엄마의 모습이 너무 가슴이 아파서 미치겠습니다. 애써 참는 열여덟 살 동생의 모습이 안타까워 미치겠습니다. 그저 죄송해서, 사랑한다는 말 한 번도 못해 드리고 보내드렸다는 게 너무나 억울해서, 죄송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용기가 서지 않습니다.

제발 들어주세요. 저의 아버지, 우리 유가족 모두는 여러분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함부로 말하지 말아 주세요. 내게는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때도, 지금도. 사랑합니다. 언제까지나.

ⓒ 윤현구


철거민 윤용헌씨에 대한 기억
(블로그 '민기자의 신문읽기' / 민왕기 / 2009-01-30)


용산 철거민 참사 현장에서 돌아가신 윤용헌씨. 저는 이분을 대학시절 몇 번 뵌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영화감독이 된 친구와, 새터민을 보살피는 친구, SBS 기자가 된 친구, 그리고 저 이렇게 넷이었죠. 1997년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대학 초년을 지내고 있던 우리는 길음동 골목을 자주 찾았습니다.

새터민일을 하는 친구의 작은 아버지였던 아저씨는 그곳에서 닭갈비집을 하고 계셨죠. 가난한 대학생 친구들이 찾아가면 이것저것 아낌없이 내어주고 챙겨주고 활짝 웃어주시던 아저씨가 지금도 생각납니다. 그때 단란한 가족들도요. 아저씨, 아주머니, 꼬맹이 둘. 그렇게 네 식구였습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던 선한 이웃이었습니다.
지금은 영화감독이 된 친구를 재워주고 보살펴 주기도 하셨습니다. 그 친구에게 윤용헌씨의 집은 제2의 가족이었고 안식처였고 든든한 후원자였습니다. 그 친구가 용산 참사가 있고 며칠 후 목이 메어 전화를 해왔습니다. "그때 길음동 알지? 나 보살펴주시던 분 말야. 그분이 용산참사에서 돌아가셨대. 빚진 게 많은데... 어떡하지... 어떡하지..." 전화에선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한동안 멍하니 방에 앉아있었습니다.

순천향병원에 들러 조문하고 아주머니의 손을 잡았는데 거칠고 단단하지만 따뜻한 손입니다. 아들 둘은 영전 곁에서 멀뚱히 서 있고, 아마 시일이 흐른 후에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가슴 아프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씩씩하게.

오늘 오마이뉴스에서 아주머니가 인터뷰를 하신 동영상을 보고 또 마음이 아팠습니다. 선한 이웃 하나가 경찰의 과잉진압에, 공권력의 폭력에 아까운 생을 달리했다는 회한 때문입니다.

"생전에 그분은 남한테 베풀고 살았지 남한테 받아보고 그런 분이 아니에요. 저렇게 선하고 악하지 않은 사람이 이런 비통한 일을 겪었나, 오시는 분마다 그런 얘기를 하시거든요. 우리는 너무 한 가정의 남편이지만 아빠를 잃은 심정은 누구한테 하소연할까요. 저희도 중구 순화동에서 장사를 하다가 집달관에 의해서 내쫓겼습니다. 그것도 새벽 6시에 애들도 학교에 안 간 상태에서. 우리 작은 애는 장애가 있어요. 그런데 새벽에 와 가지고는 저희 집을 집달해 갔습니다. 그러면 애들은 학교를 어디로 가야 해요? 12월달이거든요. 그러면 저희는 어디로 갑니까? 배상도 못 받고 아무것도 못 받았는데. 그러면 할 수 있는 길이 뭐예요.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저희처럼 이렇게 투쟁을 하고 그런 상황(망루에 올라가는)을 할 수밖에 그거는 정부가 그렇게 몰았다고 생각해요. 서민층을 위한 경찰이 아니고 부유층에 있는 사람을 위한 경찰이예요. 민주경찰이 혜택을 준다면 저희같은 사람을 도와줘야 할 것 아닙니까."

* * * * *

경찰과 검찰, 정부와 청와대,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에 할 말이 있습니다. 좌우를 떠나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인본주의입니다. 그들은 약자고 당신들은 권력 아닙니까. 헌법의 정신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론 조작하고 전철연과 화염병을 부각시키면 진정 대한민국 법치의 영이 선다고 보십니까. 경찰을 포함한 대한민국 국민 6명이 아까운 생을 달리했는데, 책임지려는 자들은 왜 아무도 없습니까. 불법이라는 한마디로 요약되는, 대한민국은 정녕 그런 입에 발린 나라입니까. 인본주의 없는 법치는 아무리 근사한 논리로도, 근사한 왜곡으로 영이 서질 않습니다. 그래서 경찰과 정부가 하고 있는 일이 바로 법치 훼손인 겁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개인적인 인연 때문에, 감정 탓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부터도 반성할까 합니다. 존경하는 은사님이 인용하신 글로 대신할까 합니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그렇지 않으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 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154면)-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마음이 아리여 뭐라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잊지 않을거란 말은 꼭 해주고 싶네요...
한창 사춘기일 현구 학생이 반듯하게 자랄수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그것이 아버님의 바램이실거구요...
위로의 말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