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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이명박 정권이면 ‘국정원 정치개입’도 OK~?

우렛소리 2009. 2. 13. 13:42

<조선>, 이명박 정권이면 ‘국정원 정치개입’도 OK~?

 
 
이번에 임명된 원세훈 국정원장이 엊그제 인사청문회장에서 폭탄발언을 했다. "체제 전복세력에겐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가 침투대상이기 때문에 (정치정보 수집을) 안 할 수 없다..." 어쩌고저쩌고.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새 국정원장이 정치개입을 금지하고 있는 국정원법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대서가 아니다. '대한민국 일등신문'인 조선일보가 들으면 기겁할 얘기를 겁대가리도 없이 과감하게 질러대는 용기도 용기려니와 "저러다 조선일보에게 무슨 일 당하는 거 아냐?" 라는 휴머니스틱한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조선일보가 어떤 신문인가? 일찌기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국내 정치인 동향수집이 안기부(국정원의 전신)의 불가결한 고유 소관업무가 돼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한다"(사설, <「정치사찰이 아니었다」고?>, 1999.01.06)고 당당히 천명하고 나선 자칭 '직언신문'이다.

2002년 9월 24일자 사설 <‘천용택 국정원 정치개입’ 밝혀야>에서는 "우리는 두 번 다시 정보기관의 정치농단이 없는 세상에서 살기를 그토록 오랫동안 희구해 왔다"고 하이톤으로 노래하기도 했다.

국정원의 국내정보 수집 내지는 정치 개입을 목숨 걸고 반대한 조선일보의 웅변적인 목소리를 몇 개 더 들어 보시면, 내가 왜 그렇게 놀랬는지 좀더 이해하실 수 있을 게다.

"그의 취임을 계기로 ‘국내정보활동’이 활성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는데, 이것이 본연의 보안업무와는 거리가 먼 ‘정치적 사찰’ 등으로 이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된다... 국정원이 국가안보는 젖혀두고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할 때 국민적 저항은 물론 우리 역사는 또한번 후퇴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기를 거듭 바란다.(사설, <국정원 본연의 업무로>, 2001.03.28)

"국정원이 지니는 권력과 기능에 대해서는 재론할 필요도 없다. 집권당 내부에서조차 ‘대통령의 권한집중’의 폐해가 운위되고 있다...견제와 균형을 통해 국가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막아보자는 것이 ‘3권분립’의 정신이다. 국정원에 대한 ‘주권자’의 감시와 견제 필요성은 작금의 우리 상황이 가장 절박하게 웅변해주고 있다."(사설, <국정원장도 인사청문회를>, 2001.12.19)

"청와대와 집권세력이... 주요기관의 인사에 개입하며, 또 국가정보기관의 힘을 이용해 정치인과 언론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정권의 존립과 직결되는 범죄행위다."(사설, <‘도청’ 우리가 이런 세상에서 살았나>, 2002.12.02)

"정보기관이 권력투쟁에 민감한 대통령에게 ‘권력투쟁의 무기(정보)’를 공급하는 하수인 역을 근본적으로 할 수 없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대통령의 국내 정치행위는 집권여당과 자기 참모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원칙이다."(사설, <‘국정원 개혁’ 말은 항상 좋았지만>, 2002.12.03)

"국정원의 정치사찰이라는 악습을 어떻게 없애고, 대북 첩보 수집의 의욕과 역량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하는 게 국정원 개혁의 초점..."(사설, <國情院長 보고를 받든 안받든…>, 2003.06.17)

"국정원과 정치권력 간의 불법적 동거에 종지부를 찍고 국정원 기능의 분산을 포함한 탈정권적 개혁의 청사진이 국민 앞에 제시돼야 한다."(사설, <국정원의 ‘脫 정권적’ 개혁 청사진 내놔야>, 2005.08.11)

"국가기관이 국민의 사생활 정보를 들여다보려면 긴급 상황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법원 영장이나 당사자 사전 동의를 거치라는 게 헌법 원칙이다. 국정원이 이 기본을 지키지 않고 국민의 재산 장부를 마구 들추는 것은 국민을 24시간 전자 감시하는 미래 소설 속의 ‘빅브라더’가 되겠다는 얘기다..."(사설, <국정원이 국민 사생활 샅샅이 들춰볼 수 있다니>, 2007.07.14)

어떤가. 민주주의 근간이 되는 3권분립의 원칙에 입각해 언제든 '정권의 무기 공급처'로 전락할 수 있는 국정원의 권력남용을 막아야 한다는 조선일보의 절절한 메시지가 가슴을 후벼파는 듯 하지 않는가.

조선일보의 입장이 이처럼 확고부동할 진대, 이명박 정권의 안녕을 위해 이제껏 금지돼 왔던 '국정원의 정치 개입'이라는 봉인을 열어 젖히고자 하는 원세훈 원장의 불순한 모험에 대해 조선일보가 어떤 식으로 대응하리라는 것은 초등학생도 짐작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웁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당연히 튀어 나올 줄 알았던 비판의 말 한 마디 들리지 않는다. 분기탱천한 심판의 언어 대신 생각지도 않았던 격려의 목소리만 나붓낀다.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유주얼 서스펙트>나 <식스센스>를 능가하는 대박극장을 보여주자는 속셈일까. 독자를 바보로 만드는 2월 12일자 사설을 잠시 감상해 보기로 하자.



▲ 2009년 2월 12일자 조선일보 사설

<국정원, 역할 강화 앞서 국민을 우군(友軍)으로 만들어야>. 제목부터 훈훈하다. 내용으로 들어가면 더 온기가 넘친다.

"지금 국회엔 한나라당이 작년 10월에 낸 국정원법·통신비밀보호법·테러방지법의 제정·개정 법안이 계류돼" 있고, "국정원의 역할 확대에 관한 이 법안들은 상당한 사실적 근거를 갖고 있는데도 국정원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국민 불신 때문에 국회 처리가 한없이 늦어지고" 있단다.

"법원의 영장을 통해 휴대전화 감청을 하려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도 마찬가지. 법죄 수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휴대전화 감청이 필수적인데, "야당은 물론 국민도 호의적이 아니"어서 법안통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단다. "1990년대 법에 명문화됐다"는 정보기관의 정치정보 수집 금지 또한 이전 정권에서 몇 차례 어긴 전력이 있다며 은근슬쩍 물타기한다.

물론 경계의 말을 덧붙이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원 후보자가 의욕을 나타낸 정치정보란 것도 처음엔 정책관련 정보 수집으로 시작했다가 보고받는 쪽에서 특정인의 약점 정보 등에 맛을 들이면 보고하는 쪽도 그런 유의 정보 수집에 치중하는 방향으로 타락하게" 되니 조심하라는 것이다. '무조건 불가'에서 '조건부 허용' 쪽으로 교묘히 몸을 트는 기술이 실로 오묘 절묘 현묘하지 않은가.

그러면서 사설 말미에서 이런 식으로 코치한다. "국정원의 급선무는 지난 두 정권 10년을 거치면서 망가진 대북정보 능력을 재건하는 것이다. 국정원은 국가 차원에서 꼭 필요한 곳에만 힘을 집중해야지 자기 조직의 힘을 강화하기 위한 모호한 규정으로 무조건 힘을 실어 달라 해서는 안 된다. 국민이 국정원의 말을 믿을 수 있을 때 국민은 국정원의 역량 강화에 우군이 되는 법이다." 운운.

요컨대, 당분간 몸을 낮추고 우호적인 여론을 끌어 모으라는 거다. "정치에 개입하려 한다"는 의심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대북정보 수집이라는 본연의 임무에 집중하는 척 하라는 거다. 그런 다음에 여론을 배경으로 역량 강화에 나서라는 거다.

상식을 비웃고 읽는 이의 허를 찌르는 조선일보의 반전 메시지가 이러하다. 그토록 염려하던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이명박 정권의 등장과 더불어 말끔히 해소됐다는 것일까. 아니, 그토록 불신하던 국정원의 생리조차 이제는 믿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일까.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만드는 '조선일보 매직' 앞에 정말이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래, 네 맘대로 해라. 어차피 조선일보 세상인 것을~!(2009.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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