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무엇보다 ‘정치 검찰’의 책임이 크다
한겨레 2009-05-23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을 계기로 검찰에 대한 시민들의 비난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진 뒤 대검찰청 누리집 게시판 ‘국민의 소리’에는 검찰 수사를 규탄하는 민성이 아우성치고 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접속해 글을 올리고 읽으려고 하는 바람에 서버가 마비될 지경이다. 이런 현상은,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서 국민적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죄가 있다면 전직 대통령이 아니라 현직 대통령이라도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조사하고 밝혀야 한다. 그리고 죄가 확인된다면 그에 합당한 벌을 줘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이고 법치다. 이런 점에서,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돈을 받고 해외사업 등에 대한 편의를 봐줬다는 혐의(포괄적 뇌물수수)를 두고 검찰이 수사를 한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몇 가지 매우 큰 잘못을 저질렀다. 가장 큰 것은 수사를 잘못해서인지 아니면 위쪽의 지시에 따른 건지 모르지만, 수사 방향을 철저하게 ‘노무현 괴롭히기’로 끌고 간 점이다. 적어도 많은 사람에게 그런 인상을 줬다. 노 전 대통령을 지난달 30일 소환조사하고도 한 달 가까이 기소 여부도 결정하지 않고 미루어 온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간 검찰은 전직 대통령 정도의 인물을 수사할 경우엔 수사의 마지막 순서로 불러 조사하고 그 뒤 신속하게 신병처리 방침을 결정해왔다. 그게 관례였고, 예우였다면 예우였다. 하지만 이번엔 전혀 달랐다. 신병처리를 질질 끌며 부인과 아들·딸 등에 대한 수사 강도를 높이며 노 전 대통령을 압박했다. 그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 쪽을 모멸하기 위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수사내용이 하루가 멀다 하고 흘러나오곤 했다. 오죽했으면 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 길을 가면서 짧게 남긴 유서에서까지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고 절규했겠는가.
또한 검찰은 박연차 사건을 수사하면서 극도로 형평성을 잃은 모습을 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와 그 주변 사람에 대해서는 샅샅이 이를 잡듯이 뒤져 허물을 들췄거나 들춰내려 했다. 반면 현 정부와 관계 있는 사람이나 자기 식구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느슨한 태도를 보였다.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박연차씨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받고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에게 전화한 사실을 파악하고도 미리부터 이 의원을 수사대상에서 배제했다. 또 이 대통령의 친구인 천신일 고려대교우회장과 관련해서도 진작부터 매우 구체적인 연루 의혹이 나왔지만 수사를 미루다가 뒤늦게 균형 맞추기 제물로 끌어들인다는 인상을 줬다. 제 식구인 검사들의 경우에는, 불러 조사하는 동시에 ‘돈은 받았지만 업무 관련성이 없어 처벌이 어렵다’는 면죄부를 줬다. 임채진 검찰총장, 이인규 중수부장, 홍만표 수사기획관 등 이번 수사의 핵심인물들은 항간에 일고 있는 정치수사, 편파수사 의혹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할 책임이 있다.
이번 수사의 시작은 지난해 7월 청장 연임을 노리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태광실업 특별세무조사와 그 결과의 청와대 보고였다고 한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올해 3월부터 노 전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수사 전개로 볼 때 노 전 대통령을 탐탁지 않게 생각해온 청와대 핵심의 의중이 반영됐다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정치검찰도 문제이지만 이참에 검찰을 정권의 하수인처럼 부리려는 권력자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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