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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일주일 앞둔 토요일, 유시민은 급작스러운 상(喪)을 당했다. 그리고 나도 상을 당했다. 본래 긴 망설임 끝에 허락된 이터뷰였다. 5월 초 그는 회의에 잠겨 있었다. 사람의 말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만남을 주저했다. 어딘가에는 "나는 지금 망명 중이다. 내적 망명이다. (중략) 철골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도시 한가운데 살면서 정신적 유배생활을 하고있다"고 쓰기도 했다. 5월23일 아침, 유시민은 스스로 처한 유배로부터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끌려나왔다. 지난 6년간 그의 삶과 떼어놓을 수 없었던 사람,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하고 공부하는 생활로 돌아간 유시민이 명함에 새긴 직함은 '지식소매상'이다. 그의 서재는 고금 학자들의 연구와 본인의 경험에서 추출한 지식을, 먹기 좋은 메뉴로 구성하고 개성적인 레시피로 조리해 일반 독자에게 공급하는 작은 부엌이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와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의 저자 유시민은 몇 세대에 걸쳐 10대 후반, 20대 초반 젊은이들에게 학회 선배 같은 존재였다. 시대가 강요한 양심과 법률의 비극적 모순을 유려하게 논파한, 서울대 프락치 사건 '항소이유서'는 사회 변혁을 꿈꾼 청년들이 애장한 격문이었다. 유시민은 지식을 단단한 벽돌로 구워 명료한 구조의 '집'을 짓는 재능이 탁월한 저자다. 머릿속이 서랍과 칸막이로 구성된 게 아닐까 싶을 지경이다. 신통하게도, 간명하고 단정한 그의 문체는 느낌표나 말 줄임표의 추임새 없이도 독자를 흥분시키고 행동하도록 들쑤신다. 국회의원 시절 그를 취재했던 <한겨레> 유시민 맨 처음에는 "감사합니다" 라고 했는데 10분도 안되어, 이건 적당한 말이 아니구나 감이 왔어요. 보통 초상집은 망자, 상주, 문상객이 있는 구조에요. 누군가의 죽음이 상주에게 슬픈 일이니 그를 위로하러 온 사람들이 조문하는 건데 국민장은 조문객도 전부 상주니까 감사하다는 말이 경우에 맞지 않다고 느껴졌어요. 다 같이 상주인데 그 중에서 저 같은 사람은 정치활동 하면서 망자를 지켜주지 못한 경우니, 죄송하다는 말씀이 적절할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제게 "정말 감사합니다. 절대 잊지 않을게요"라는 분도 있었는데, 자신이 심리적인 상주면서도 오래 빈소에 머물지 못하고 저희는 종일 자리를 지키며 대신 상주 노릇을 해주니 고맙다는 뜻이었을 겁니다. 민주주의란 욕망이 욕망을 통제하는 제도 유시민 복사용지와 펜이 있기에 잠시 쉬는 동안 썼어요. 상황실 컴퓨터도 있었지만 공무원, 당직자, 기자, 지지자들이 뒤섞여 있어, 작업할 환경이 못됐어요. 가신 어른의 삶, 인간됨, 내가 그분의 생에서 중요하게 보는 것들을 저처럼 황망하기만 한 사람들이 반추할 때 참고하라고 쓴 거죠. 기자들도 자꾸 소감이 어떠냐고 물어대는데 일일이 대답하기가 고달프기도 했고요. 두 번째 글(<넥타이를 고르며>)을 쓴 것은... 영결식장에 가기 싫었거든요. 국민장을 위해 받아들이긴 했지만, 가해자가 조문하러 와서 헌화하는 일종의 가면무도회 같은 행사였죠. 우리 삶에는 그처럼 논리적으로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 많이 존재해요. 장의위원으로서 안 갈 수 없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정당성이 없고 역사적으로 단죄 받을 영결식이라고 봤어요. 그 마음을 표현한 것이죠. 유시민 이런 얘기 하면 원망처럼 들려서 안 되는데.... 노 대통령은 퇴임 뒤에 조중동은 보지 않았어요. 그들은 어차피 비난하는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비난할 것이라 여겨 개의치 않으셨어요. 이번 검찰 수사 진행 중에는 사저를 찾아가보면 눈에 띄는 신문이 <현겨레>와 <경향신문>뿐이었어요. 그런데 지난 두 달간 두 신문의 보도, 그건 죄악입니다. 죄악. 조중동과 똑같이 "받아쓰기"했을 뿐 아니라... 제가 <한겨레> 20년 독자인데 한달 동안 무서워서 신문을 펼치지 못했어요. 포털로 기사는 읽었지만 지면으로 보기는 끔찍했어요. 기자들이 인터뷰하자고 연락했기에 내가 무서워 읽지 못하는 신문에 어떻게 인터뷰를 하느냐고 반문했죠. 어느 기자에게 이런 법이 있느냐고 했더니 대통령은 인권이 없대요. 그래서 전직 아니냐 했더니 공인은 인권이 없대요. 대통령 돌아가시고 나서 여러 신문들을 보며 다시 한번 끔찍했어요. 불과 1, 2주 전에 유시민 <후불제 민주주의>는 물론 재미로 헌법을 알아보자는 책은 아닙니다. 우리 삶에서 논란이 되는 현상에 대해 규범적 판단을 할 때 그 준거로 헌법의 오랜 규정을 대보면 복잡하게 논쟁하지 않아도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죠. 유시민 시청 앞 광장 문제가 헌법이 완전히 짓밟힌 대표적 사례예요. 날마다 짓밟히고 있죠.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는 실제로 찾아먹지 않으면 빼앗겨요. 헌법재판소로 가는 길은 실제로 너무 힘들고 국민 개개인이 자기가 지닌 헌법적 권리로 인지하고 나의 이 권리를 건드리면 가만 안 둔다는 의지가 있어야 비로소 제 것이 되는데 우린 갈 길이 멀죠. 권력자가 선의를 갖고 있을 때는 민주주의가 작동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금방 꽝 되는 거예요. 대통령을 뽑을 때 국민이 예측을 못한 거죠. 이미 누리는 헌법적 권리는 기본으로 다 지켜주고, 말하자면 한정식에다 '경제 살리기'라는 일품 요리를 추가해주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기본은 다 빠지고 약속한 일품요리도 안 올라오고 있잖아요? 정권을 바꾼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학습하는 중이죠. 유시민 살벌한 표현이지만 똑같은 이야기죠. 다만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면 좌빨이 준동한다고 난리가 나는데 "세상엔 공짜 점심이 없다" 이러면 보수들이 좋아하죠. (좌중 웃음) 유시민 민주주의란 기본적으로 욕망이 욕망을 통제하는 제도예요. 이기적 활동을 용인하는 거거든요. 각자의 권리인식이 먼저죠. 헌법의 기본권은 재산의 과다, 교육수준, 연령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허용된 것이지만 향유주체는 개인이에요. 인식하면 누리고 인식하지 못하면 법 위에서 잠을 자는 것이죠. 그러니까 여기서 계몽은 누가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체험과 학습을 통해 내 권리를 알아가는 과정이고 그것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연대가 필요해요. 타인에게 주어지지 않으면 내게도 주어지지 않으므로 필연적으로 헌법의 규정은 연대의식의 발생을 내포하고 있어요. 당장 자신의 권리를 침해 당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침해 당하면 격분하면서 시민행동이 조직되는 것이죠. 그게 잘되는 나라가 민주주의 선진국이고요. 물론 대통령이나 권력자가 계기가 될 순 있어요. 대통령이 선의를 가지고 국민이 권리를 맘껏 향유하도록 해줌으로써 그 다음에 누군가 빼앗아가려고 할 때 마찰이 생기게 하는 방식으로 계몽에 기여할 수도 있고 혹은 이미 부여된 것을 자기가 빼앗아가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계몽에 기여할 수도 있고. (좌중 웃음) 전자가 목적의식적 계몽주의, 후자를 결과적 계몽주의라고 생각해요. 노 대통령은 목적의식적 계몽주의에 빠져 고생했고 이 정부는 민주주의가 뭔지 몰라서 결과적 '계몽군주'역할을 하는 셈이죠. 아버지는 굉장한 이상주의자셨어요 유시민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들이받고 그런 건 좀 있죠. 유시민 두 살 아래 여동생, 두 살 위, 네 살 위 누나가 있었으니 여자형제들 사이에서 자랐죠. 초등학교 4학년까지는 누나보고 언니라고 불렀던 기억이 나요. 결혼 전까지 6년 정도 자취했어요. 식당에 가면 입에 맞는 맛있는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졌나. 젓가락으로 헤집어서 재료가 무엇이고 어떤 순서로 버무렸겠다 짐작한 다음 집에 가서 만들어보면 맛이 비슷하게 나와요. 샤브샤브, 구절판도 그렇게 만들고, 돼지고기 삶으면서 이것저것 넣어보다가 인스턴트 커피를 반 숟갈 넣었는데 맛있더군요. 유시민 요리를 가사일 중에선 제일 괜찮게 생각해요. 집안일이라는 것이 요리를 빼면 모두 원위치 시키는 노동이잖아요. 유일하게 최초와 달리 새로운 무엇이 나오는 건 요리밖에 없어요. 제일 싫어하는 일은 다림질이죠. 입식 스팀다리미 사달라고 졸랐는데 아내가 요새 양복도 안 입으면서 뭘 그런 걸 사냐고, 책 팔리는 거 봐서 사준대요. (좌중 웃음) 유시민 아버지는 역사 교사셨는데 굉장히 이상주의자였어요. 80년 5.18 당시 제가 체포돼 가족들이 한달 반 가까이 행방을 몰랐어요. 합수부에서 구치소로 가는 도중 관악경찰서에 1주일 있을 때 아버지가 찾아오셨어요. 보자마자 두 팔 들어봐라. 앉았다 일어났다 해봐라 하셨어요. 그리고 가셨어요. 사지 멀쩡하니 됐다고 가신 거죠. 군법회의에서 재판 받는 날도 참관을 오셨다는데, 재판장이 공소장을 읽고 똑같은 상황이 오면 다시 이런 일을 하겠냐고 묻더군요. 자존심이 상했어요. 지금 생각으로는 똑같은 상황이면 똑같이 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했더니 화를 벌컥 내더군요. 전날 집에서 신체검사통지서를 받은 아버지는 일말의 기대를 품고 오셨는데 제 대답을 듣고는 그냥 나가셨대요. 저놈. 나오긴 글렀다고. 근데 전 그날 저녁 풀려나서 이틀 뒤 새벽에 군에 갔습니다. 유시민 당시에는 <나는 고발한다>가 번역돼 있지 않았어요. 관련이 있다면 유신시대 지학순 주교가 쓴 <정의가 강물처럼>에 실린 상고이유서였죠. 자료도 메모도 없으니 예전에 읽은 책들의 내용을 떠올리며 원고지 110매쯤 되는 글을 이틀 반 동안 총 10시간에 걸쳐 미농지 넉장에 먹지 석장을 끼워 잉크 없는 볼펜으로 꾹꾹 눌러썼어요. 퇴고도 할 수 없었죠. '항소이유서'는 밖으로 내보낼 생각을 없었고 정말 억울해서 판사 보라고 쓴 거예요. 근데 이돈명, 유시민 아이고, 그런 글과 어떻게 견줘요. 그저 마침 그 어름에 누군가가 <맹자>를 읽어보라고 줬고 구치소에서 평소 읽고 싶던 <사기열전> 두 권을 차입해서 읽던 중이었어요. 그래서 주나라가 망한 이야기 같은 것이 예화로 등장했을 거예요. 정치인의 일상엔 짐승의 비천함이.... 유시민 재주가 이것밖에는 없는 데 딴 일을 하려니 고달프죠. 그러나 책 쓰기는 제가 좋아하는 일이고 정치는 본질적으로 더욱 뜻 깊고 위대한 일이에요. 좋은 정치를 편다면 몇 천만 국민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으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중에 그만큼 고귀한 게 어딨겠어요? 그래서 다른 직업보다 고양된 심성과 통찰력, 책임, 용기, 희생을 요구해요. 성인의 고귀함이 있는 영역이죠. 근데, 정치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짐승의 비천함이 있어요. 야수적 탐욕도 함께 있고요. 그래서 하루하루가 너무나 괴로워요. 정치를 하려면 국회의원직을 유지해야 하니까 효도잔치 가서 노래하고 초등학교 총동문체육대회 가서 텐트마다 돌며 소주 먹고 하는 거죠. 그런 일을 즐기는 정치인도 있으나 그런 사람은 성인의 고귀함에 도달하기 어려워요. 반면 정치에서 고귀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런 일상이 괴로워요.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기 위해 야수적 탐욕을 상대하며 짐승 같은 비천함을 감수하는 일, 절대 아무나 못하는 거예요. 유시민 정치하는 동안 논객 1위로 뽑히지 않아 다행입니다. 정치하면서 1위로 뽑혔다면 어떤 문제에 접근할 때 해결을 중심으로 임하기보다 주로 문제를 드러내는 분석, 해석에 치중했다는 뜻이니 제대로 정치 못했다는 방증이죠. 유시민 그건 글이 형편없다는 뜻이죠. 글이 말보다 훨씬 밀도가 높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니까요. 유시민 저는 따로 글쓰기 훈련을 받은 적도 대가의 작품을 필사해본 적도 없어요. 그런데 좋은 책을 여러 번 읽을 때 내 글에 도움이 된다는 걸 느껴요. <토지>는 어휘와 문장 용례도 굉장히 다양하고 같은 어휘도 어떻게 다른 단어와 어울리면서 다른 의미를 만들어내는가를 보여주죠. 유시민 과문하지만 우리나라 판결문에서는 아름다움을 느낀 적이 없고요. 독일에서 공부할 때 읽은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 판결문 전문 두 편을 기억하고 있어요. 첫 번째는 예수가 매달린 십자가상을 교실마다 걸도록 돼 있는 바이에른주 교육법에 대해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위헌판결을 낸 판결문이었어요. 다른 한편은 아우슈비츠를 조작이라고 주장하는 일을 처벌하게 돼 있는 법이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주장한 우익단체의 위헌 소송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판결문이었어요. 표현의 간결함과 정밀함. 논리적 연쇄의 치밀함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이 있었죠. 수학도 잘은 못하지만, 말로 하면 두세 페이지의 설명을 한 줄로 정리해버리는 수식엔 압축의 아름다움이 있어요. 몇 개의 공리를 토대로 정리를 쌓아나간다거나 배리법을 이용해 반증을 함으로써 명제를 무너뜨리는 과정도 아름답죠. 유시민 낚시는 그냥 물만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시간 보내기 좋은 레저예요. 항상 생각에 잠겨있는 제게는 쉼표 같은 것이죠. 축구는 지난해 5월 부상당한 이후로 1년째 못하고 있어요. 포지션? 이 나이 되면 아무 데나 끼워주면 해야지 포지션 따질 처지가 아니에요. 야구도 좋아해요. '시민광장' 내에 부산, 울산, 고양, 대구 네 군데 야구팀이 있어서 6월에 U리그를 개최한대요. 스타 정치인은 호랑이 등에 올라탄 사람 유시민 그게 문제인데 관찰자적인 심성이나 태도가 있기 때문에 내부 메커니즘에 몰입이 잘 안 되는 거예요. 1998년부터 1년간 학술진흥재단에서 일했는데 6개월이 지나니 내 권한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끝났고 CEO의 결심만 기다려야 했죠. 국회의원 보좌관을 할 때는 1월1일 눈뜨면 12월31일까지 1년이 훤히 보였어요. 가을이면 국정감사 예결위 들어가고, 몇 월에는 어떤 민원이 주로 발생하고 계절별 지역구 행사는 무엇이 있고 똑같죠. 정치인 중에는 안정되고 예측 가능한 그 생활에 맞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성격상 반복되는 일을 잘 못해요. 책 쓰기는 일은 같아도 매번 다른 책을 쓰니 괜찮아요. 유시민 관료조직이란 특별히 경계하고 점검하고 격려하지 않으면 저절로 인간을 억압하는 시스템이에요. 서열화, 상명하복, 복지부동, 눈치보기, 찍어 누르기, 줄 세우기, 핑퐁치기 등이 개인의 의도와 관계없이 생래적으로 존재하죠. 핑퐁치기요? 예를 들어 장애인 유시민 정치생활 6년 중에 제일 행복했죠. 마음을 먹고 방법만 찾으면 구체적으로 몇 명의 사람을 덜 불행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가시적 성과가 나오니까요. 어떤 정책을 세우면 시설아동들이 18살에 얼마를 쥐고 나갈 수 있고, 기초노령연금 도입하면 몇 명한테 얼마를 드릴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나오니까요. 유시민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을 들여다보면 슬픈 일뿐이니까요. 형님과 누님이 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와 대화하면서 "뻔히 고충을 보면서도 돈이 부족해 어쩌지 못하는 게 괴롭다"고 토로했더니 위로해주더라고요. 난 형제인데도 어느 때는 모른 척 지나가는 때가 있다고, 감당이 안 된다고, 위안을 받았습니다. 유시민 출마해봐야 못 이긴다는 건 처음부터 알았죠. 빅뱅의 <세상에 너를 소리쳐!>라는 책 제목처럼 제 목소리를 내고 싶었어요. 야당을 할 때는 하더라도 의연하게 행동해서 나중에 국민들이 알아줄 때 집권당을 하면 된다. 패배하는 한이 있더라도 참여정부 5년간의 국정운영 성과와 부족함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개선할 방법을 말하고 정책 노선을 계승해가자. 단 한번이라도 소리칠 기회를 얻고 싶은 게 동기였어요. 유시민 스타 정치인은 호랑이 등에 올라탄 사람이죠. 여기서 호랑이는 대중의 열망이에요. 한번 올라타면 놓고 떨어지든가 죽기 살기로 매달려서 끝까지 가든가 둘 중 하나예요. 위험하죠. 위험을 벗어나고 싶으면 지지자를 실망시키더라도 빨리 손을 털고 그만두든가 정치를 하는 한은 중간에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더라도 끝까지 가는 것이죠. 야수랑 싸우다가 야수가 되는 수도 있죠. 야수와 싸울지라도 성인의 고결함을 견지해야만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어요. 그러면 국민들이 알아봅니다. 유시민 제가 선택할 문제죠. (사이)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상중에 거리에서 마주친 시민들, 서울역에서 버스를 타고 지나갈 때 창밖에 보이는 시민들이 건넨 말들은 있죠. 정치인들이 그런 데 혹하기 쉬워요. 하지만 그렇게 의사결정을 할 수는 없어요. 제 인생도 있고 제가 속해 있는 공동체의 여러 상황도 함께 고려하는 거죠. 또한 참여정부 재평가는 지식인들이 해야 할 일 유시민 그건 지식인이 하는 일이죠. 국민들에게는 분석 없이 직관적으로 확 오는 평가가 있어요. 인간 유시민 그걸 그렇게 다 엮어서 생각하면 곤란하고요. 할 이야기가 없어요. 저희가 5년 내내 억울하다며 한 이야기를 모든 언론이 하는 상황에 보탤 것도 없어요. 언론이 우리한테 물어보고 쓰지도 않고요.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해온 사람들의 울음 속에는 원통함과 더불어 국민들에 대한 고마움이 있어요. 무슨 종교집단처럼 지난 몇 년간 매도 당해왔는데 너무 고맙죠. 기쁨과 슬픔이 뒤범벅된 모순된 상황이고, 앞으로도 그런 시간을 한참 보내겠죠. 그러나 그것을 확대 해석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국민들의 생각이 바뀐 것은 지난 일에 관한 것이고 앞날을 앞날이에요. 보상심리로 노 전 대통령을 열심히 모신 사람이 선거에 나오면 지지해줄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정당의 존재근거가 되고 우리 사회 발전에 제대로 기여할 수는 없어요. 민주당은 나름의 역할이 필요한 정당이에요. 다만 제게 정치는 역시 이상주의운동이거든요. 민주당에는 이상을 품고 있는 조직이 풍길 수 밖에 없는 향기가 없었기에 당을 나온 것뿐입니다. '진정한'이라는 단어는 말의 폭력 유시민 말씀 드리기 조심스럽지만,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은 명품과 짝퉁을 나누려는 사고가 있어요. 그런데 역사는 늘 배신자 취급 당한 짝퉁의 승리로 갔거든요. 사회주의운동도 결국은 소련, 동유럽은 다 망하고 서유럽의 사민주의만 살아남았잖아요. 사민주의는 베른슈타인 주의, 짝퉁 사회주의란 말이죠. 저는 '진정한'이라는 단어가 말의 폭력이라고 봐요. 국회 앞에 가서 "여기 오로지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진정한 국회의원 있으면 나와봐!"하고 외쳐봐요. 나오는 놈은 사기꾼이고 안 나오는 놈은 전부 진정한 국회의원이 아닌 거죠. 그런 식의 이야기는 내전이나 이데올로기 전쟁에서 적개심을 유발하기는 좋지만 헌법에 규정된 절차를 이용해 다수의 지지를 획득하려는 정치운동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유시민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사이엔 샛강, 열린우리당과 민노당 사이에는 한강이 있다는 말이 나온 적이 있어요. 그건 마케팅 전략으로도 어리석어요. 그렇다고 한나라당 지지자가 민노당으로 올 리는 없죠. 왜냐하면 한강 지나서 또 샛강까지 강을 두 개나 건너야 하는데, 억수로 수영 실력 좋은 놈 말고 누가 오겠어요. 바로 옆에 강 하나만 건너면 되는 사람을 데리고 와야죠. 사실 우리 쪽은 항상 민노당, 진보신당이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우리를 바라보는지 건너다보고 있거든요. 그분들의 주장이 조금 비현실적인 면이 있지만 논리적으로 맞고 정의롭고 시련에 굴복하지 않으며 좁은 길을 가는 분들이라는 존경심이 항상 있어요. 짝퉁이 망해야 명품이 팔린다는 전략을 참여정부 5년 동안 내내 구사하는 동안 남은 정서적 반감이 있는 것이죠. 비판은 좋지만 그럴 필요는 없지 않나 싶어요. 유시민 첫째, 국가적으로 한-미FTA가 좋으냐 나쁘냐를 먼저 검토해 장기적으로 이익이라는 판단을 먼저 내렸습니다. 둘째 그렇다면 참여정부가 할 거냐 다음 정권으로 넘길 거냐를 고민했는데, 정치적으로는 완전 손해고 국가적으로는 비용이 덜할 것이라는 결론이었어요. 참여정부 지지층은 FTA를 반대하는데 그분들이 지지하는 정부가 결행하면 반대를 완화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죠. 역풍을 각오하고 보수정부가 할 일을 감행한 거죠. 우리가 하면 초기 협상조건을 유리하게 잡고, 임기 내에 비준동의가 나가면 보상책도 포함될 거라고 상정하고 추진한 것이죠. 유시민 나한테 주어진 역할은 최선을 다했으므로 후회가 없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했느냐는 이견의 여지가 있죠. 돌이켜보면 인간에 대한 무례 앞에서 격분을 다스리지 못했어요. 사람을 괴물로 그려놓고 비방하고 모욕하고 저주하는 언어들이 활개치는 상황에서 미소 지으며 "일리가 있으십니다. 그런데" 하는 식의 토론은 할 수 없었어요. 만약 그랬다면 제 개인적으로는 좋았겠죠. 토론해보면 너무 재밌는 '지식인 유시민 사랑 받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우선 유용한 인간이 되자고 생각하거든요. 제 자신을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요. 노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많이 당했을 때 < 유시민 저는 조언자를 잃기도 했지만 굉장히 좋은 지적인 동반자를 잃었어요. 유시민 현재 작업 중인 책은 책과 지식인에 관한 것이에요. 제가 10대, 20대에 읽었던 고전을 다시 읽는 프로젝트죠. 그리고 경북대 강의 '생활과 경제'의 내용을 토대로 책을 만듭니다. 연말까지 두 권을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유시민 한때 엄청 사나웠죠. 국회의원, 대통령 후보 낙선하고 나니까 참 좋았어요. 책임을 면제받았다는 안도감 같은 게 컸어요. 돌이켜보면 결과가 비슷했는데 괜히 싸웠다는 생각도 많이 했고요. 요새는 생각하는 걸 다 말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새삼
글 김혜리, 사진 손홍주, 장소협찬 돌베게 클립 비보를 받아 들고도 마감의 대안을 찾을 경황이 없었다. 유시민은 잡지쟁이의 곤경을 배려해, 어떻게든 약속대로 해보자고 했다. 그가 상주로 있다는 서울역 분향소로 향했다. 줄의 끄트머리를 찾는 데 한참이 걸렸다. 그렇게 조용한 군중은 본 적이 없었다. 혼자 조문 온 시민들이 많아 정적은 더 무거웠다. 추모 객 대열 옆을 지나가던 중년 남자가 낮술 기운이 어린 소리로 고함쳤다. "당신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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