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노무현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 김정란

우렛소리 2009. 10. 5. 03:03
노무현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 김정란
글쓴이 : 경상도민
출처 : 유시민을 믿고 지지하는 참여시민 네트워크, 시민광장

노무현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김정란 / 시인,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무현이 부엉이바위에서 허공으로 사라졌을 때, 그는 그냥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는 분명히 방향을 제시했다. 나는 그를 보내는 글을 쓰면서 당대를 가득 채우고 있는 눈부신 상징들에 대해 말했었다. 노무현-부엉이는 온몸으로 어둠의 이편에서 싸웠다. 그는 자신의 몸을 던져서 살아있는 상징이 되어 빛이 오는 방향을 가리키고 떠났다.
그가 영원히 쉬고 있는 봉하마을에는 부엉이바위와 사자바위가 나란히 서 있고, 두 바위 사이에 뱀바위가 있다. 이 놀라운 상징들의 우연의 일치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의미로 가득찬 이 상징들의 배치는 나를 전율하게 한다. 이명박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난 뒤, 숭례문이 타는 것을 보았을 때도 나는 전율했었다. 나는 그 기막힌 사건을 역사가 우리에게 보내는 준엄한 경고로 받아들였었다. 그리고 우리는 기어이 가장 아름다운 대통령을 잃어 버렸다. 상징은 시대 안에 가득 차 있다.
노무현은 자신의 생애와 육체 전체로 상징이 되었다. 그가 더 이상 우리와 함께 있지 않다고 해도, 그 상징은 시퍼런 비수처럼 허공에 걸려 있다. 진실을 구하는 자들을 긴장시키는 상징. 노무현은 부엉이바위 위에서 우리의 뒷통수를 냅다 갈겼다. 그렇게 살 거야? 계속 그렇게 무력하게 주저앉아 있을 거야?
나는 노무현-부엉이가 어둠을 찢으며 날아오를 때, 그 사건은 미래에 출현할 사자의 포효를 준비한다고 썼었다. 그리고 그것은 부엉이와 사자 사이에서 사악한 혀를 날름대는 뱀과의 싸움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썼었다. 시대를 농단하는 뱀의 혓바닥이 뿜어내는 독기를 흩어 버리는 것. 그것이 미래의 사자들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방향은 제시되었다.
언어가 진실을 전하지 않는 사회는 음울하다. 거짓이 참을 참칭하며 경쟁력을 가지고,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멍청한 바보들의 헛된 몸짓으로 만들어 버리는 사회는 참혹하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변절을 밥 먹듯이 하고, 그러고도 가장 깨끗한 사람처럼 행세하는 사회, 얼굴 두께가 경쟁력의 척도가 되는 사회는 비참하다.
우리는 노무현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 사회는 박정희의 폭압과 전두환의 추악한 살인행위에서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사회였다. 민주화는 다시 신기루처럼 먼 지평선에서 가물거리고 있다.
정부에 비판적인 교수들은 이런 저런 핑계로 강단에서 쫓겨나고, 모든 반대 의견은 말살되며, 항의하는 자들은 잡혀가고, 전처럼 얻어맞지는 않지만, 대신 돈으로 칭칭 묶인다. 피디와 기자들의 입에 재갈이 묶이고, 시민운동가는 감시당하고, 대통령이라는 새로운 군주의 가솔들은 온갖 자리에 낙하산으로 내리 꽂힌다.
능력, 도덕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나의 가솔들에게 편안한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뿐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바로 나의 이익이기 때문이다. 부끄러움? 그런 건 처음부터 없다. 거짓말장이들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그걸 왜 걱정하는가? 거짓의 나팔수들이 굉굉대며 사람들의 귀에 대고 거짓을 진실이라고 떠들어대면 모든 것은 유야무야 넘어가기 마련인데.
사람들은 기묘한 착시현상에 사로잡혀 있다. 분명히 민주화 단계를 거쳤는데, 무엇이 달라져도 달라졌을 것이 아닌가? 지금 이 시대가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와 같을 리가 있는가? 그런데 정말 그런가? 실질에 있어 우리 사회의 민주화 지수는 지금 얼마일까?
노무현 이후를 준비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실질적인 선진화를 이루는 일과 연관되어 있다. 우리 사회는 물질적 층위에서는 화려한 탈근대를 구현하고 있지만, 정신적 층위에서는 아직도 전근대에 머물러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무엇이 규정하는지 알지 못한다. 근대화는 물질적 수준에서 상당한 성과를 이루었지만, 그것을 향유하는 계층은 점점 더 소수가 되어 가고 있다.
전국토의 대부분을 극히 일부의 상층계층이 점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자신의 부를 쉽게 늘린다. 이런 정도의 부동산 점유 비율이라면, 조선시대의 양반계층의 토지 점유와 무엇이 얼마나 실질적으로 다른 것일까? 그 귀족들은 지금 바야흐로 4대 강을 파헤쳐서 한탕 야무지게 해 드실 생각으로 입맛을 다시고 있다.
선진적인 사회란 룰이 지켜지고, 각자가 노력한 만큼 성과를 누리며, 부의 양적인 크기보다는 그 질과 분배의 방식에 관심을 가지는 사회이다. 정보는 진실을 바탕으로 유통되며, 각자가 자신이 선택한 존재의 의미를 실현하도록 사회적 제도가 합리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사회이다.
어디에서나 반칙이 횡행하고, 정당한 분배의 방식에 대한 관심을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민주국가라면 국민이 당연한 권리로 누려야 할 정권에 대한 비판을 위험한 정치적 책동으로 몰아붙이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 단지 옛날의 양반들을 대신한 신종 귀족계층에게만 아름다운 미래가 보장되어 있을 뿐이다.
국민은 뱀의 혀를 가진 정보유통업자들의 거짓말에 속아 언제까지나 영주님의 마름으로만 남아 있어야 한다. 그들은 번번이 자신의 존재를 배반하는 정치적 결정을 내린다. 어느 지역 소속의 어느 정당만을 줄창 찍어대는 국민은 시민이 아니라 신민이다. 그는 영주님이 자신에게 무엇을 해주든 상관없이 영주님만 찍는다. 그는 영주에게서 땅을 빌리고 거기에 자신의 존재를 붙들어 맨 채 자신의 존재지수를 제로로 만들었던 중세의 농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여전히 땅에 매여 있다.
생각하면, 한국 사회는 참으로 암담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대로 앉아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지난 수십 년간 우리가 피를 흘리며 이룩했던 성과들을 뱀들의 입에 고스란히 털어 넣을 수는 없지 않은가?
마침 노무현재단이 출범했다. 어떤 한 사람이 한국 사회의 산적한 문제들을 다 해결할 수는 없다. 우리는 함께 모여, 밑바닥부터 찬찬히 다시 다져나가야 한다. 노무현재단은 그러한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더 이상 혁명은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사람들로 하여금 바로 생각하고 바로 판단하며 바로 행동하도록, 자신의 정치적 행동의 당당한 주체가 되도록 밑바닥부터 다시 다져나가는 일상적 훈련이 필요하다. 그것을 위한 공익적 사업을 상시적으로 전개시켜야 한다.
물론, 노무현재단이라고 해서,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들을 다 풀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의미 있는 출발이다. 우리는 이 재단을 통해서, 스스로 허공으로 걸어들어간 노무현이 미처 하지 못한 일들에 착수할 수 있을 것이다. 찬찬히, 아주 찬찬히, 병들어 있는 한국사회를 제 자리에 가져다놓을 수 있는 많은 일들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노무현을 기리는 글을 『오마이뉴스』에 발표했을 때, 많은 분들이 피를 토하는 내 마음에 공감을 보내주셨다. 그리고 상당한 액수의 원고료를 보내주셨다. 글 한 편으로 그렇게 많은 원고료를 받은 것은 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그 원고료를 노무현의 정신을 기리는 사업에 쓰겠다고 독자들과 약속했다. 나는 당연히 그 약속을 지킬 것이다. 개인적인 성금과 원고료를 합해서 노무현 재단에 기증할 계획이다.
많은 돈을 내야만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각자 능력에 따라 후원금을 내면 된다.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그것에 내가 진실을 구하는 마음과 영혼을 담는다면, 그 지극함이 하늘에 닿는다고 나는 믿는다.
수로부인이 동해 용에게 잡혀갔을 때, 현자는 “여러 사람이 땅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면 용이 능히 수로를 돌려줄 것”이라고 조언한다. 현자는 능력이 탁월한 어떤 영웅의 개인적인 영웅적 과업 대신, 평범한 여러 사람이 한결같은 소망으로 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를 것을 권했다. 결국 용은 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에 항복했다.
오랫동안, 땅을 두드리는 진실한 마음으로 우리 사회의 선진화라는 수로부인을 내어놓으라고 병든 욕망에 시달리는 한국사회라는 용에게 요구해야 한다. 그대가 한 번 두드리면, 그것은 하나의 울림이 된다. 그대가 그대의 친구와 한 번 더 두드리면, 그것은 벌써 지진의 시작이다.
이미 노무현이 여러 번 땅을 두들기고 가지 않았는가. 이제 우리가 노무현이 될 차례이다. 우리가 노무현이다. 우리는 기어이 밤을 찢고 사자의 승리의 함성을 지를 것이다.
노무현을 오래오래 사랑하는 방법
정 철 / 카피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