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고은광순 칼럼] 스스로 험한 길 찾아 떠나는 유시민에 박수를 보낸다

우렛소리 2007. 12. 24. 03:22
[고은광순 칼럼] 스스로 험한 길 찾아 떠나는 유시민에 박수를 보낸다
[데일리서프라이즈   2007-12-22 15:40:21] 


말 많고 탈 많던 대선이 끝났다. 소원을 풀게 된 이명박 당선자가 재산을 다 헌납하고 오로지 국민만을 위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기를 희망할 뿐이다.

물론 BBK 특검은 약속대로 정정당당하게 받아야 하며 나오지 않은 결과에 대하여 미리 엄포성 발언 따위는 하지 말 일이다. 무죄로 판단이 난다면 상대방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은 시정잡배나 할 소리다. 이미 때와 장소에 따라 말을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고 했던 것부터 부끄러운 일을 자초한 것은 본인 자신 아니었던가.

1940년 아카데미 8개상을 휩쓸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 1939)는 속치마에 관한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빅터 플레밍 감독은 대연회 장면을 찍을 때 스카알렛의 자매들에게 비싼 실크 속치마를 사서 입고 계산서를 청구하라고 했다. 그런데 스카알렛의 동생이 차액을 남기려했는지 싸구려를 사 입고 왔다. 관객이 알 수 없는데 어떠냐고 항변하는 여배우에게 감독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자신은 알고 있잖아!”

감독은 실크 속치마를 입은 배우의 행동과, 실크 속치마를 입은 척 하는 배우의 행동이 관객의 눈에 달리 비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야망이 큰 사업가, 정치가로 변신 했다가 중도에 실패하고 사업으로 큰돈을 벌어 유능한 경제인으로 널리 알리고는 다시 계획대로 대권에 도전하여 성공을 거머쥔 사나이. BBK에 관해 엎치락뒤치락하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고 책임 없다고 본인은 큰 소리 뻥뻥 치고 있지만, 변하지 않을 것은 “너 자신은 알고 있잖아!” 라는 말은 사실이라는 점이다.

많은 국민이 그가 당당한 척 하는지, 당당한 사람인지 앞으로 예리한 시선으로 주목하게 될 것이다.

대권 삼수생들과 길 떠나는 유시민의 다른 울림

대권도전 삼수생인 이회창, 이인제, 권영길, 허경영. 장기간의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삼수를 해야 했던 김대중 외에는 삼수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다. 더욱이 진보를 표방하는 민주노동당에서 삼수생이 나왔다는 것은 진보를 내세웠던 그들이 전혀 진보적이지 못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었다.

삼수생임에도 뜻밖의 인기를 끈 것은 허경영이었다. 자칭 IQ 430이라는 그가 18년 군사독재자 박정희의 후반부 10년 비밀정책보좌관을 했다는 걸 보면 그의 역사의식지수는 바닥을 기었던 모양이다. IQ 100에 역사의식지수가 웬만하면 박정희가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것을 알았을 터인데 말이다.

그러한 그가 이인제 후보를 바짝 따라붙은(?) 득표를 얻은 것은 화폐개혁으로 지하자금 200조, 지자체선거 폐지로 150조를 걷어 들여 각종 수당을 준다는 그의 제안에 꽤 많은 젊은이들이 혹했던 때문인 것 같다. 국민들은 기존의 정치인들에게 신물을 느끼고 엄청나게 커다란 변화를 희망하고 있다는 것이 감지되는 대목이다. 그 정도 파격이 아니라면 정동영 같은 정치인은 이제 대권도전 3수는 꿈도 꾸지 말 일이다.

이렇게 모두 제 잘났다고 하는 정치판에 조용히 새 바람으로 신선한 공기를 일으키는 정치인이 있다. 자신을 두 번이나 택해주었던 일산 지역구를 떠나 대구 수성구로 길을 떠나는 유시민이 바로 그다.

그는 민주당시절 이해찬의원의 보좌관으로 있으며 지역주의와 보스정치의 폐해를 누구보다도 많이 느꼈을 것이다. 그는 개혁당을 만들어 보스정치 타파, 상향식 공천, 지역주의 청산, 국민통합, 부패청산을 외쳤다.

그는 볼륨을 키워 열린우리당에 그대로 개혁당의 가치를 이식하려했지만, 그의 정당혁명을 이해하고 동조하는 세력은 많지 않았다. “정당개혁을 하려면 딴 데 가서 하라!”고 그를 몰아친 의원도 부끄러움을 몰랐으며 그 둘레에서 박수를 쳐댄 의원들도 부끄러움을 몰랐다. 구태정치인들은 자기들의 야망을 위해 정당혁명을 위한 시스템을 하나 둘 허물어갔고 대선은 패배했다.

이제 그는 공언한대로 대구 수성구(을)로 가서 총선을 준비할 모양이다. 함께 그 더러운 지역주의와 보스에 줄서는 정치를 깰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쩌겠는가. 지역주의에 안주하고, 보스에 아부하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많다면 혼자라도 부딪힐 밖에.

수성 을의 주호영의원은 “유시민이 일산에서 자신이 없는 모양이다. 지역구를 버리고 대구에 오겠다니 노무현 대통령처럼 되겠다는 것인가”라 말했단다. 불안한 속내를 감추기 위한 허세일 수도 있겠지만, 지피지기(知彼知己)라면 백전백승이라고 했거늘 주호영은 유시민을 몰라도 한참을 모른다.

유시민은 일산(고양시 덕양 갑)에서 두 번 거뜬히 당선되었다. 장관을 하며 많은 일을 해냈다. 그가 설마 재선에 자신이 없어서 버리고 도망가듯 대구에 가는 것일까? 유시민은 노무현처럼 지역주의에 도전해서 실패를 할지라도 도전정신 하나만으로도 후일 대통령에 도전할 때 사랑을 받을 것이라 전략적 선택을 한 것일까? 바라건대 주호영의원은 내년 4월 총선까지 그 생각에 변함이 없기를 바란다.

지역주의란 참으로 더러운 것이다.

‘61년의 5.16 군사구데타 이후 첫 열린 5대 대통령 선거(1963년)에서 윤보선후보는 “박정희 형은 빨갱이였다. 아우도 뻔하지 않겠나?”고 색깔공격을 했지만 호남인은 박정희에게 몰표를 주었다. (전체 득표율에서 1.5% 앞선 박정희 당선)

1967년 다시 6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보선과 박정희가 맞붙었을 때에도 호남은 박정희에게 더 많은 표를 주었다. 그러니 1960년대에만 하더라도 빨갱이 유령, 지역주의 유령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독재권력에 맛을 들인 박정희가 3선 개헌을 위한 전초작업으로 국회의원 2/3 이상의 의석수를 얻기 위해 ‘67년 제7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유령유권자를 조장하고 군인들에게 공개투표를 하게 하는 등 부정선거를 획책하여 의석의 74%를 당선시키고 계획대로 ’69년 9월 일요일 새벽 야당의원들을 따돌리고 회의장을 이동하여 1200명의 기동경찰의 호위아래 개헌안을 도둑통과시키자 국민의 저항은 심해지기 시작했다.

1971년 7대 대선에서 호남의 김대중 후보가 예상외로 바짝 추격하자 박정희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검찰총장, 내무부장관, 이효상 공화당 의장으로 구성된 선거대책 본부를 조직해 관권선거의 총사령탑을 만들고, 갖가지 선거대책을 세운다.

선거운동에 투입된 이효상 공화당의장이 경상도에 가서 유권자들에게 내뱉은 말은 이런 것이었다.

“문딩이가 문딩이를 안찍으마 누가 찍노?”
“영도자는 군부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카이.”
“갱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마 우리 영남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안 되긋나.”
“이번 선거는 전라도캉 갱상도캉 싸우능기 아이가.”
“이참에사 마, 박정희 후보에게 대구, 경북에서 몰표를 화악 주어가꼬 기어이 당선시키뿌리자꼬”

지역주의는 1971년 4월. 명분 없는 3선 개헌과, 세 번째로 대선을 불안하게 장악한 대통령 선거에서 이런 방식으로 더럽고 교활하게 그러나 화려하게 탄생한 것이다.

이렇게 비열한 지역감정을 이용한 선거전략은 1992년 대선에서 법무장관 김기춘에 의해 “우리가 남이가! 경상도 대통령이 안 나오면 고마 영도다리에 다 빠져 죽어삐리자꼬마”에 의해 확인되고, 1997년 김윤환은 “TK(대구-경북) PK(부산-경남) 합해서 갱상도 남도, 북도 대동단결로 정권창출 이룩하자! 우리가 남아가!”로 승계되었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 지역주의를 이용한 정치인들은 37년간이나 단물을 빼 먹은 것인데 안타깝게도 37년(1971~2007)이 지나는 동안 사람들은 그것을 인간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운명처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 지역주의를 꿀단지로 생각하는 정치인들은 영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호남의 정치인들도 지역주의를 꿀단지로 여기게 되었다. 전국 상황, 한국의 미래역사를 생각하는 정치인이라면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일이지만 지역구를 기반으로 하는 국회의원들에게, 대선후보들에게 그것은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꿀단지였던 것이다.

때로 사람들은 꼬질꼬질한 속옷을 입고 있어도 겉모습이 영판 달라 보이면 그에게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그가 자기들의 삶을 송두리째 다르게 만들어줄 것을 기대한다. 이명박이 승리하고 허경영이 시선을 모으는 이유다.

그러나 그런 시끄러운 시절에도 묵묵히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이 있다. 37년 묵은 지역주의가 한국의 미래를 좀먹는 무서운 괴물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정치가는 꿀단지를 내려놓아야 하고 유권자는 깨끗한 속치마를 볼 줄 알아야 한다며 괴물의 심장을 향해 가장 어두운 길을 떠나는 사람이 있다.

길을 떠나는 사람의 마음에 단심이 있으니 그 길은 어둡지만은 않은 마음을 담는 아름다운 길이 될 것이다.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짝짝~

 

 


고은광순(한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