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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러고도 ‘공영방송’을 입에 올리나

우렛소리 2008. 8. 21. 04:57

[사설]이러고도 ‘공영방송’을 입에 올리나  
 
 

경향신문  기사전송 2008-08-21 00:28 
 
 
 
청와대가 법리적 논란 속에 해임을 강행한 정연주 전 KBS 사장의 후임으로 3배수 후보군을 압축했다고 한다. 강대영 전 부사장과 김은구 전 이사, 박흥수 강원정보영상 진흥원 이사장이 그들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어제 “KBS 출신으로 신임 사장을 임명한다는 방침에 따라 이들 3명이 검토되고 있다. 박 이사장은 KBS 출신이 아닌 점이 감점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제청권자인 KBS 이사회가 공모를 하는 동안 청와대는 실질적인 인선을 한 꼴이다.
방송법 50조 2항은 ‘KBS 사장은 이사회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3항은 ‘사장을 제청하는 때에는 그 제청 기준과 제청 사유를 제시해야 한다’고 각각 규정하고 있다. 이사회의 제청권은 물론 투명한 절차까지를 염두에 둔 규정이다. 이에 근거, 이사회는 20일 오후 6시까지 공모를 받은 뒤 21일 오전 임시회의에서 후보를 압축한다는 일정을 제시한 바 있다. 결국 청와대가 이사회의 권한을 깡그리 짓밟은 것이다. 이쯤되면 ‘법’과 ‘원칙’을 따져온 이사들은 청와대에 인선 백지화를 요구하든지, 사표를 던지든지 해야 옳은 것 아닌가.

더구나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캠프 출신으로 후임 사장으로 유력했던 김인규 전 KBS 이사는 전날 ‘코드 인사’ 논란으로 정치적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사장 포기를 선언한 터다. 김 전 이사의 ‘결단’ 자체가 사전 각본에 따른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주기에 충분한 정황이다. 이 무슨 눈가리고 아옹하는 격인가. KBS를 산하 공공기관쯤으로 여기는 듯한 청와대 인식에서 ‘관영방송 KBS’의 부활을 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이번 사태는 정권의 방송장악 기도를 재차 확인시켜줬다고 하겠다. 얼마전 이 대통령의 ‘멘토’라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정권이 바뀌었다면 현직에 있는 분들은 진퇴에 대해 대통령에게 물어보는 것이 옳다는 게 소신”이라며 후임 내정설을 두고는 “내가 결정하지 않고 있는데 누가 결정하느냐”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이러고도 ‘공영방송 KBS’를 운운할 자격이 있는가. 이 정권에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 즉 공영방송을 기대하는 일은 애초부터 무망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