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막 나가는 정치검찰
경향신문 기사전송 2008-08-21 00:28
검찰이 조선·중앙·동아일보에 대한 광고중단 운동을 주도한 네티즌 6명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광고주의 명단과 연락처 등을 인터넷에 게재해 네티즌으로 하여금 집단적으로 항의 전화를 걸도록 유도함으로써 기업의 업무를 방해하고 조·중·동 신문에 110억원의 피해를 끼쳤다는 혐의다.
검찰은 집단으로 전화를 걸어 광고중단을 요구한 행위가 형법상 업무방해에 해당된다는 논리를 편다. 하지만 업무방해가 성립하려면 특정 행위에 위력(威力)이 가해져야 한다. 자유의사를 힘으로 제압하는 행위다. 그런데 영장이 청구된 6명이 한 행위란 공개된 정보인 기업의 전화번호를 남들에게 알려준 게 고작이다. 전화번호 게시행위가 위력인가. 백보를 양보해 전화를 건 행위가 위력에 해당된다 하더라도 행위의 주체는 이들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네티즌이다. 남이 한 행위에 왜 이들이 책임을 져야 하나. 네티즌의 전화를 받은 기업 역시 광고중단 여부를 자기 의사에 반해 결정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번 사건에 업무방해를 적용할 하등의 근거가 없다.
아무리 뜯어보아도 이번 사안은 ‘변형된 소비자 운동’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소비자의 요구가 얼마나 먹혀드는지는 시장에 맡겨두면 된다. 사법적 잣대를 들이댈 사안 자체가 아니다. 검찰이 처벌 논리를 끌어대기 위해 외국사례를 샅샅이 뒤졌지만 적합한 경우를 찾지 못한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무슨 중대범죄 수사라도 하는 양 출국금지에 압수수색, 영장청구까지 하는 검찰의 막무가내식 행보가 딱할 뿐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검찰은 국민의 신뢰를 순식간에 잃어가고 있다. 정치권력이 바라는 것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TV 프로그램에 번역오류가 있다고 전담팀을 꾸려 수사에 나서고, 회사 경영을 잘못했다고 KBS 사장을 서슴없이 체포한 데서 그런 정치 검찰의 성향은 입증된 바 있다. 이제 권력과 친한 언론의 광고손실까지 검찰권으로 메워주겠다고 나섰으니 더 이상 말해 무엇하랴. 이렇게 막 나가다간 정치 검찰을 넘어 권력의 시녀, 권력의 주구라는 치욕적 별명이 붙을 수 있음을 검찰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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