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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심상정 대표의 다섯가지 오해

우렛소리 2008. 11. 22. 15:50

심상정 대표의 다섯가지 오해 

 

 

 

김성환  날짜 : 2008-11-21

 

 

 

 

심상정 진보신당 대표님께


저는 지난 참여정부에서 한미FTA 협정이 체결될 무렵 청와대 정책조정비서관을 했던 김성환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과 심대표님간의 토론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토론 내용 중에 몇 가지 오해가 있다고 생각되어 저의 의견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 “제조업”에 대한 참여정부의 정책을 오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심대표님은 첫 번째 글에서 "제조업을 경시하면서...금융자유화를 제도 선진화로 잘못이해한 한미FTA의 과오를 인정해야 한다."고 했고, 두 번째 글에서는 "대통령은 국가균형발전전략으로 클러스터 정책을 추진했으나, 재경부 관리들이 관심이 없어서 실패했다."고 말했습니다.

추측컨대, 심대표님이 17대 국회 '재정경제위' 활동을 주로 하시면서, 재경부 관리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그런 생각을 하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실상은 그와 다릅니다.

참여정부는 단 한번도 제조업을 경시한 적이 없습니다.

심대표님이 말한 바와같이 참여정부는 성장정책의 일환으로 혁신주도경제시스템 정착을 위해 노력했고, 이를 위해 과기부를 부총리부서로 승격시키고 산하에 과학기술혁신본부를 두고, 국가 R&D 예산을 전략적으로 배분하는 한편 예산 규모도 2002년 6조원에서 2007년 10조원으로 대폭 늘린 바 있습니다.

또한, 지방의 경쟁력도 결국은 클러스터형 발전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산자부'가 중심이 되어 지방의 대학과 산업을 연결하는 이른바 "누리사업"을 추진하였고, 그 성과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 제조업 노동생산성을 100으로 했을 때, 서비스업은 56.9임에 그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제조업 경쟁력에 상응하는 서비스업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로 한미 FTA를 추진한 것이 주요 동기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이를 두고 제조업을 경시하거나 실패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과도한 비판이거나 오해라고 생각됩니다.

 


두 번째, 개방의 혜택이 특정세력에게 집중되어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것 역시 오해의 소지가 충분합니다.


심대표님은 개방의 손익을 보완하는 제도로 통상절차법을 언급하고 계십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통상절차법의 제정에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통상절차법의 유무가 양극화 확대와 축소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통상절차법의 핵심은 결국 통상의 교섭권을 행정부가 가질 것인가? 아니면 국회가 가질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심대표님이 말하는 개방과정의 손해 보상은 통상절차법 유무와 관계없이 "농업 대책"이나 "무역조정 지원에 관한 법률" 등의 형태로 이미 한미 FTA 추진과정에서 만들어져 있고, 또 필요한 대책이 있으면 만들면 되는 문제입니다.

문제는 개방과 양극화의 인과관계인데, 실제로 경제계 일부에서는 경제의 세계화 과정에서 양극화는 불가피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참여정부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참여정부는 개방을 통해 성장의 동력을 확대하는 한편, 복지 확대를 통해 양극화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동시에 추진해 왔습니다. 복지분야 정부재정이 참여정부 초기 21%에서 28%로 확대된 것이 단적인 예입니다.

물론, 참여정부의 복지정책이 충분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집권 후반기에 비전 2030을 만들어 참여정부가 다 못한 부분을 미래의 과제로 남겨 놓게 된 것이지요.

개방과 양극화 예방을 동시에 추진하는 대표적 나라가 유럽의 복지국가들입니다.

그런데 스웨덴이나 핀란드가 복지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보다 더 "경제자유도"나 "개방의 정도"가 높은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들 국가가 양극화가 최소화되고 복지국가를 유지하는 것은 "개방"을 막은 것이 아니라 "복지"를 늘렸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심대표님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다시말해 개방과 양극화는 그 국가의 성장과 복지 정책의 조합의 문제이지 반드시, 개방이 곧 양극화를 초래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셋째, 한미 FTA를 '무분별한 협정'이라고 단정 짓는 부분에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심대표님은 한국은 추가 개방이 아니라 내수에 주력할 시기에 미국과 불평등한 협정을 맺었으므로 차제에 재협상이 아니라 아예 폐지를 하자는 주장이신 것 같습니다.

내수를 확대하자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한국 경제여건상 내수 확대의 핵심은 경쟁력있는 중소기업을 확대하고, 과잉인 자영업과 도소매업을 줄이는 대신 부족한 사회서비스업과 사업서비스업을 늘리는 조치일 것입니다.

참여정부는 중소기업의 경쟁력 확대를 위해, 그리고 심대표님이 예를 든 실리콘벨리나 에릭슨, 노키아와 같은 클러스터를 확대하기 위해 기존의 어떤 정부보다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중소기업 상생협력'이나  '혁신형 중소기업 3만개 만들기' 등이 대표적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내수 확대도 개방의 문을 닫아 놓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의 경제 여건상, 중소기업도 이제는 대기업의 하청계열화가 아니라 자체로 세계적 경쟁력을 가져야 하는 것은 이제는 상식입니다. 중소기업이 국제 경쟁력을 가지려면 대외적으로는 개방을 하고, 대내적으로는 클러스터형 산업구조를 가져야 하는데 심대표님은 그 한쪽만을 강조하신 것 같습니다.

 


넷째, 이런 맥락에서 보면 심대표님은 대외 개방으로 국내 산업구조조정을 하는 것은 국가 폭력이라 하신 부분도 다소 일면만 강조하는 방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국내의 낙후된 산업을 고도화 하는 방식은 복합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분야는 가능한 시장영역에 맞기는 것이 좋다는 것이 진보적 경제학자들도 공통적인 견해입니다.

문제는 산업의 고도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업을 능동적으로 해결하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얼마나 잘 갖추어져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이 과제는 참여정부도 그 기반을 다지는 일까지는 했지만 성과가 충분하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특히, 최근의 실물경제 위기를 슬기롭게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는 기존의 고용보험 주머니뿐만 아니라 국가 재정도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영역"에 투자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 분야는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다섯째, 심대표님은 한미 FTA를 여전히 신자유주의의 전형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길게 30년, 짧게 20년간 세계의 주된 흐름이었던 신자유주의 노선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 신자유주의 노선을 이끌었던 미국에서 민주당의 오바마 당선자가 신진보주의 노선을 가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미국의 오바마 정부가 추후에 "자동차"를 포함하여 FTA 재협상을 요구할 경우에 이것은 무엇이라 불러야 하겠습니까? 이때는 한미 FTA를 "신 진보주의의 전형"이라 불러야 할까요?

제가 한미FTA를 추진할 무렵에 노무현 전 대통령님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얘기가 있습니다. "절대로 국익에 손해나는 협상은 하지 말아라. 미국측이 국익에 손해나는 무리한 요구를 해 오면 판을 깨도 좋다"는 말이었습니다. 양국간 협상이므로 기본적으로 주고 받아야 하지만, 철저하게 국익중심으로 가라는 취지였지요.

이번에 한나라당이 한미FTA 선비준을 밀어 붙이는 과정을 보면서, 재협상의 불기피성과 차제에 세계적 금융위기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이 한미 FTA 협정내에는 없는지 되집어 보자는 것도 당시의 노대통령님의 "국익중심의 실용주의" 관점과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난 이야기이지만, 노 전 대통령님은 한미FTA를 추진할 무렵인 2006년 3월 인터넷 언론과의 대화에서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쓴 적이 있습니다. 당시의 상황은 참여정부의 복지 확대 정책을 보수 기득권 세력은 '좌파'라고 공격하는 반면, 한미 FTA 추진에 대해서는 이를 반대하는 진영에서 '신자유주의'라고 공격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한쪽에서는 좌파로 부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신자유주의로 부르는 말이 안되는 모순적 상황을 노대통령님은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조어를 통해 일종의 야유 성격의  냉소적 표현을 했던 것입니다.

참여정부는 '개방과 혁신을 통해 성장의 동력을 확보'하고, '복지를 통해 사회통합'을 이루려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 왔습니다. 상대적으로 한나라당이 개방에는 적극적인 반면 복지에는 소극적이고, 민주노동당 등은 개방에는 소극적인 반면 복지에는 적극적인 정치 지형을 고려해 볼 때 참여정부의 노선은 정당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참여정부에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합리적 진보주의" 혹은 "신 진보주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개인적인 바람을 하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앞서 저의 의견의 대강을 말씀드렸지만, 지금 경제여건이 매우 어렵습니다.

우려스러운 것은 개방의 성과를 국내 복지로 연결시키지 못할 경우 10년전 외환위기 이상의 고통이 부동산 버블 붕괴와 중첩되어 중산 서민층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입니다.

또한, 한미 FTA뿐만 아니라 한 EU, 한 인도, 한중일 간의 FTA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농업 뿐 만 아니라 미리 예측하지 못한 분야에서 비교 열위산업의 기업가와 노동자가 어려움에 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피해 계층에 대한 맞춤형 대책뿐만 아니라, 보편적으로 노동 복지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 올리려는 개혁 진보진영의 공통된 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됩니다.

예를들어 현재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법인세 5% 인하는 년간 6조원의 세수를 감소시키는 한편, FTA의 최대 수혜자인 대기업 등에게 2중에 혜택을 주게됩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에 반대하는 한편, 이 예산을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데 지원하고, 의료 보장성을 80%까지 높여 병 때문에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대학 등록금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일에 쓰자는 운동을 공동으로 추진하면 좋을 듯합니다.

그런면에서 오늘의 이 논쟁이 촛불에 참여했던 많은 분들을 포함하여 개혁 진보진영간의 작은 차이를 줄이고 현재의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를 모으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덧붙임.


이번 토론을 지켜보면서 토론주제에 대한 찬반 여부와 관계없이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미워하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되 그 사람의 죄를 미워하는 것은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진심으로 저의 글이 개혁진보진영 내의 간극을 줄이는데 보탬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혹여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08년 11월에 전 청와대 정책조정비서관 김성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