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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우익 이념… 역사·교육계 “위험한 발상”

우렛소리 2008. 11. 25. 13:50

극단적 우익 이념… 역사·교육계 “위험한 발상”

경향신문  기사전송 2008-11-25 02:53 | 최종수정 2008-11-25 03:27 
ㆍ식민지근대화·무력통일 주장… 냉전·반공 인사가 강의
ㆍ비판여론 일자 문화예술 인사 등 60여명 추가 ‘물타기’도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에 나선 교육당국의 밀어붙이기가 점입가경이다. 서울시교육청은 24일 서울시내 고교생을 대상으로 ‘현대사 특강’을 강행키로 하고 강사진 선정 막바지 작업을 벌였다. 강사진 후보에는 일본에 의한 ‘식민지 근대화’론, 무력을 통한 남북통일 등을 주장하는 인사 등이 대거 포함됐다.


시교육청은 여론의 비판을 의식해 80여명 극우 인사들은 그대로 포함시키되 전·현직 교장, 서울시 교육연수원 강사, 문화·예술인사 60여명을 추가해 ‘물타기’하기로 결론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역사·교육학계는 사회 곳곳에서 편향적 사고와 극단적 시각으로 잦은 논란을 일으킨 인사들이 고교생 특강에 나서는 데 대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뉴라이트 사관, 교육현장 전파=강사진에 포함된 80여명에는 극단적인 ‘냉전·반공주의’ 인사, 일본의 식민통치가 한국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주장하는 인사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특히 뉴라이트진영이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은 현행 7차 교육과정과 어긋나는 데다 역사학계에서도 공인받지 못한 주장임에도 이번 특강을 통해 학교 현장에 보급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파문이 일자 이날 시교육청 및 심사위원들은 강사 가운데 일부 문제 인사들을 배제하는 방안을 놓고 밤 늦게까지 숙의를 거듭했다. 당초 이날 하기로 한 확정 명단 발표도 25일로 미뤄졌다.

이번 ‘현대사 특강’은 서울시교육청이 보수단체의 계획안을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확인돼 교육의 중립성 훼손 비판이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 9월 초 전국학교운영위원회총연합회(학운위총연합) 등은 ‘현대사 새로 알기’ 특강에 관한 사업 제안서를 시교육청에 제출했다. 이들이 작성한 ‘교육 소개서’에는 “김선호·이동복·류근일·이영훈·이명희·박효종·조갑제·송인정·김진성 등 9명이 서울시 공정택 교육감과의 간담회를 통해 (특강 실시) 실천에 옮기도록 협의했다”고 쓰여 있다. 당시 시교육청은 개별 단체와는 상관이 없으며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24일 알려진 강사후보 명단은 우익단체들이 당시 제안한 86명과 거의 다르지 않다.

지난 7월 특강 예산 편성을 주도한 김진성 서울시의원은 “우리 현대사를 올바르게 가르치기 위한 것으로 최근 교과서 수정 문제와는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역사학계 반발=역사학계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우려했다. 극우 진영이 ‘강연’의 형식을 빌려 일선 고교에 이념을 확산하는 우회로를 택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정태헌 교수(고려대 한국사학과)는 “극우 인사들이 대한민국 정통성에 대해 특강을 한다면 편향성을 피할 수 없다”며 “뉴라이트 인사들은 식민지 시기를 근대화로 규정함으로써 반국가적인 역사의식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한철호 교수(동국대 역사교육학과)는 “국내 뉴라이트진영의 비역사 전공자들이 검정기준에도 못미치는 ‘대안교과서’를 내놓고는 억지 논리를 우기고 있다”며 “후쇼샤 교과서로 논란을 빚은 일본 우익만도 못한 행태”라고 말했다.

이번 특강 계획이 역사교육의 본질적 성격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박찬승 교수(한양대 사학과)는 “역사교육이 하루 아침에 되는 것도 아니고 한두 차례 강연으로 학생들의 역사관이 달라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7차 교육과정은 교과서 이외 교사의 재량에 따른 역사교육을 보장하고 있어 교과서만 문제삼는 것은 교육현장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말했다.

주진오 상명대 교수는 “역사 전문가도 아닌 사람들이 나서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겠다는 것”이라며 “어떻게 이것이 교육인가”라고 반문했다.

‘현대사 특강’이 강행될 경우 학교현장에서 새로운 갈등이 빚어질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보수성향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25일 “좌편향 역사교과서가 적절하게 수정되지 않을 경우 직접 행동에 나서겠다”는 내용의 입장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선학교 교장 중에는 교총 소속이 많아 이들을 중심으로 일부 역사교과서에 대한 퇴출 움직임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