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법치주의
노무현 시민학교(제4강) 수강 후기
강사 : 문재인 변호사 / 前 청와대 비서실장
노무현 시민학교 네 번째 강사는 '노무현의 아름다운 그림자' 또는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라고 불리우는 문재인 변호사입니다. 30년 가까이 인권변호사로 활동하신 분이고요. 다들 아시다시피 참여정부 때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내신 분입니다.
노무현 시민학교 수강 후기인지라 가급적 강연에 대한 후기를 써야 하겠지만 강연 후 저는 오히려 문재인이라는 사람에 대한 매력에 빠져 그분에 대한 후기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문재인 변호사님은 '노무현의 법치주의'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로 강의를 하셨는데요. 친절하면서도 담담하게 진행하시는 강의를 듣는 동안 저는 문득 이런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낯선 그에게서 ‘그’의 향기가 난다”
예전 화장품CF 카피인데요. 약간 패러디해 봤습니다. 강의를 위해 자리에 앉으신 문재인 변호사님 뒤로 밑짚모자 쓰고 환하게 웃으시는 노짱님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요. 강연하시며 해맑게 웃으시는 문재인 변호사님과 어쩌면 저리도 비슷할까?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표정을 가지신 분이기에 마치 노무현 대통령님을 대신하여 우리에게 그분의 마음과 뜻을 전달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한마디로 문재인 변호사님에게선 인간적으로 ‘그’의 향기가 났습니다.
'친구', 그 또 하나의 전설을 위하여
문재인 변호사님은 1982년 인권변호사 시절에 변호사 노무현을 만납니다. 그 이후 노무현 대통령님의 서거와 장례까지 줄곧 함께 해 오신 분이지요.
두 분에게서는 부산 사나이의 의리가 물씬 풍겨납니다. 자갈치시장의 바다내음과 짠물에 퍼덕거리는 생선을 도마 위에 올려 놓는 그 억센 팔뚝에서 느껴지는 바로 그 느낌이죠.
강연하시는 말씀에는 강하면서도 따뜻한, 어눌하면서도 정감있는 그런 느낌이 부산사투리 곳곳에 배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의리의 두 사나이 중에 뚝심있는 한 분이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인지 문재인 변호사님은 나이에 비해 흰 머리카락이 많았고, 얼굴도 많이 수척해 보였습니다.
영화 '친구'를 통해 곽경택 감독이 들려주고 싶었던 메세지는 전설이 되어버린 친구의 우정과 의리라고 합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님과 문재인 실장님을 통해, 그 두 분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돌이켜 보며 마치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을 현실에서 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세상을 먼저 떠난 친구를 위해 문재인 변호사님은 이제 친구가 이루었던 것, 친구가 말하고 싶었던 것, 친구가 해내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말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2009년 9월 15일, 이 날의 강의가 문재인 변호사님이 대중 앞에서 강연하는 첫 강연이었습니다. 변호사님에게는 첫 강연이기도 하지만, 저에게는 앞으로 전설이 될 ‘우정과 의리’의 주인공인 문재인 실장님을 만나는 영광된 자리였습니다.
내 친구 노무현을 위한 변호
문재인 변호사님은 노무현 대통령님 이야기부터 꺼내셨습니다.
“대통령님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마이크만 주어지면 말씀을 참 잘하신다.”
연애인에게 끼가 있듯이 정치인에게도 끼가 있다면 대통령님에게는 그런 끼가 많았던 것 같다고 하시며 그에 비해 자신은 언변에 자신이 없어 대중 앞에 나서는 걸 싫어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노무현 대통령님의 말씀(言)과 관련해서 이야기하셨습니다.
“봉하마을에 관광객이 많이 찾아올 때다. 방문객들에게 인사하는 것이 생활처럼 얽매여 있어 힘들었지만 그 일을 좋아했다. 어떤 때는 1시간 넘게 인사하며 이야기하시곤 했다. 어떤 때는 관광버스 타고 오신 연세 많으신 분들에게 그분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이야기를 밑짚모자 쓰신 채 1시간 넘게 강연하시기도 했다. 지금도 방문객들 앞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즐기던 모습이 그립다. 대통령님은 말씀을 잘하시고, 또 하는 걸 좋아하셨다.”
그러면서 다시 더 과거로 돌아가 참여정부 때의 일을 회상할 때는 즐겁지 않았던 기억을 끄집어 내셔야만 하셨지요.
“참여정부 때는 대통령님의 말 때문에 시비가 참 많았다. 대통령님도 많이 속상해 하셨겠지만 나도 그랬다. 말에 대한 품위를 시비삼아 깜이 아니라는 둥 비난하는 언론에 대해 무척 속상했다. 그런데 더욱 나를 속상하게 한 것은 그 날 강연에서 전달하려고 했던 말들은 모두 없애 버리고 말투나 말꼬리를 붙잡아 언론이 전달하는 것이었다.시비가 될 만한 말만 붙잡아 부각시켰기에 당시 현장에서 꼭 전해져야 할 말들은 모두 차단되거나 왜곡되어 전달되었다. 하지만 시비가 되는 그 말조차 강연이나 연설 현장에서는 자연스럽게 표현될 수 있는 말이었다. 그 다음날 언론이 시비가 되는 말들만을 공격했기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춰졌지만 현장 분위기에서는 맞는 표현이었다.”
저에겐 아주 친근하게 다가왔던 노짱님의 그런 말들을 하이에나 같은 언론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오랫동안 물고 뜯었는지 지금도 회상하면 치가 떨립니다. 그런 기억을 문재인 실장님은 담담하게 풀어내시더군요. 마치 돌아가신 노짱님의 한을 변호하고 위로하듯 말입니다.
“시비가 되는 말들은 대중들에게 연설하거나 강연할 때 주로 생긴다. 언제 그런 일이 발생하느냐 하면 노무현 대통령님 말씀이 아주 잘 될 때, 대중들과 호흡이 맞아 연설이 아주 잘 될 때 그런 경우가 발생한다. 그럴 땐 더 신이 나셔서 말씀이 더 빨라지면서 그런 경우가 생긴다. 말씀을 잘하시는 모습을 볼 때면 한편으로는 좋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문재인 변호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이제 다시는 그 정감있는 위트와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과 함께 들려주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현실을 생각하니 또 한번 마음이 먹먹해 졌습니다.
1. 법치주의란 무엇인가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시며 원래 강연 주제가 “검찰, 사법제도 그리고 노무현”에서 “노무현의 법치주의”로 변경된 이유에 대해 설명하셨습니다.
“참여정부의 법치주의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법치주의라는 말이 요즘 이상하게 사용되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법치주의를 국민들이 지배체제에 대해 순응할 것을 요구하는데 사용하는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이비 법치주의다. 이것은 왜곡이다.”
사실 법치주의에 대한 정확한 뜻은 “사람의 지배가 아닌 법의 지배”를 말하는 것이며, 목적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보장”을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단순하게 말해 사람이 지배하는 것, 곧 인치(人治)가 되면 폭력(暴力)이 행사되기 때문에 법을 지켜 ‘개인의 자유’라는 영역을 최대한 보장해주기 위한 자유주의의 산물이 법치주의라고 하시더군요.
결국 법치주의는 개인이 아닌 국가권력에 대한 제한과 통제원리로 적용되어야만 한다고 하셨지요. 이것은 국가권력기관에 종사하는 이에게 요구해야 하는 것이라고요.
최근 인사청문회의 예를 드시며, 고위공직자는 법치주의를 실천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위장전입이나 세금탈루와 같이 남들이 다 지키는 법을 위반하면서 특권과 반칙을 통해 사익을 추구한 사람은 고위공직자의 자격이 없다고 하셨지요.
형식적 법치주의에서 실질적 법치주의 방향으로
그러면서 형식적 법치주의가 자유와 평등, 사회정의에 대한 가치와 합치되는 실질적 법치주의로 진보해 나가야 한다고 하셨고요. 이를 위해서는 국가권력행사의 요건이 형식이나 내용만이 아니라 헌법의 가치나 기본원리에도 합치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소수자의 자유와 인권도 보장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민적 법치주의에서 사회적 법치주의 방향으로
시민적 법치주의에서는 시민계급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목표였으나 자본주의 발전으로 사회, 경제적 모순이 생겨남으로 경제적 조건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실질적으로는 부자유와 불평등만을 당하게 된다고 하셨는데요. 사회적 법치주의를 통해 국가의 기능이 자유를 보장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자유를 위한 계획을 실행하는 단계까지 진보해 나가야 한다고 역설하셨습니다.
진보적 미래를 위한 노무현 대통령님의 민주주의 연구
노무현 대통령님은 퇴임 후에 ‘민주주의 2.0’과 ‘진보적 미래’에 대해 추진하시고 연구하셨는데요. 법치주의를 원론적으로는 설명할 수 있지만 법치주의가 실질적, 사회적 법치주의로 진보하기 위해서는 원동력이 필요하다고 여기셨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열려 있는 봉하마을에서<개방>,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사상과 철학과 종교와, 지역과 학력과 직업의 경계를 넘어 농촌과 환경과 먹거리를 생각하고<공유>, 관광버스 타고온 노인들부터 유치원에서 단체로 견학온 어린이들까지 방문객들이라면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참여>, 인터넷 토론사이트 민주주의2.0을 오프라인 민주주의 2.0을 시도하셨다고 이해합니다. - 작성자註)
법치주의도 민주주의에 의해서만 지켜질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헌법도 기존의 고전적 법치주의를 넘어 사회적 법치주의까지 있지만 이를 지키고 실행하는 공직자들에 의해 쉽게 후퇴할 수 있는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네요. 따라서 국민들이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감시하여 원상태로 되돌려 놓아야 한답니다.
여기까지가 법치주의에 대한 원론적인 강의였고요. 이후 참여정부 때는 법치주의를 어떻게 실현했는지에 대해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2. 권위주의 타파
실장님은 법치주의란 공권력 형성의 원리이기 때문에 국민과 권력이 만나는 자리에서는 항상 발생한다고 말하시며 용산사태의 경우를 예로 드셨습니다.
용산의 문제가 비록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생명과 인권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진압했느냐? 하는 것이 법치주의 적용 여부를 가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타계하셨지만 예전에 강원용 목사님이라는 분은 "노무현 대통령님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사실상의 초대 대통령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전의 대통령은 모두 제왕적 대통령이었기에 실질적인 헌법상의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님이 유일했다는 뜻이지요.
제왕적 대통령은 권력을 사유화하는 자(者)다
제왕적 대통령은 공천권과 당직자 임명권을 가지기에 당의 총재가 됩니다. 초법적 권력을 가지기에 법치가 아닌 인치를 행하게 됩니다. 따라서 퇴행적 정치문화인 정경유착, 권언유착, 밀실공천, 밀실인사, 기획사정, 세무사찰, 정권안보, 돈선거, 부패정치, 가신이 생기게 됩니다.
현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가 정치와 경제 모든 면에서 거꾸로 질주하고 있다는 것은 지난 강연을 하신 분들 모두에게서 들었던 내용이라 달리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요. 다만 제왕적 대통령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한 민주공화국 시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왕 밑에 백성이거나, CEO 밑에 샐러리맨(?)으로 취급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또 기분 씁쓸했습니다.
책임총리제나 당정분리는 법치주의의 산물이다
총리가 행정각부를 통할하여 국무위원 제청권을 가지는 것과 당정분리를 통해 공천권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새로운 제도를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져 있는 제도를 법대로 시행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전에는 대통령이 이미 다 결정해 놓은 것을 총리가 제청하게끔 하고, 국회의원 공천권을 가짐으로 당을 장악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저는 지금 생각해 봐도 이 부분이 열린우리당 때 참 아쉬웠던 순간이었습니다. 차라리 당신께서 직접 공천을 하셨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이가 갈리는 정동영의 행태와 당이 깨지는 일은 겪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3. 권력기관 개혁
현 이명박 정부에서의 민정수석은 모두 고위직 검찰 출신이면서 현 검찰총장보다 선배고, 지금은 법무부 장관보다 선배가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참여정부를 제외하고는 이것이 상식처럼 진행된 일이라고 합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하는 일 80% 정도가 검찰 관련 일이라고 합니다. 현 정부가 검찰을 장악한 것처럼 보이지만 검찰은 장악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유착관계를 가진다고 말씀하시네요.
유일하게 참여정부에서만 첫 민정수석을 문재인 실장님께서 맡게 되심으로 이런 관계가 단절되었다고 합니다. 민정수석실에는 검찰과 통하는 직통전화가 설치되어 있었고, 검찰에서 지원하는 여러 대의 차량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실장님은 민정수석을 하시면서 지원받던 차량과 각종 혜택을 다 되돌려 줬다고 말씀하시며 검찰개혁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셨지요.
4. 사법개혁
참여정부에서부터 국민의 사법참여를 위해 배심제를 적용하였고 앞으로 그 대상을 늘리고 있다고 합니다. 법학전문 대학원(로스쿨)의 경우에는 마지막까지 지방대학에 정원의 50% 정도가 할애되도록 노력했다고 합니다. 최초의 여성 헌재 재판소장을 시도했고, 여성대법관이 임명되었지요
5. 국가인권위원회 강화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부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기관이랍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님은 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위원회의 시정권고에 대해서도 성실히 반영하여 이후 청와대로 보고하도록 함으로 실질적으로 위원회의 위상을 높여줬다고 합니다.
나이스 문제로 교육부와 전교조의 다툼에서 전교조 손을 들어 준 부분과 인권 문제로 이라크 파병을 반대한 부분을 들며 위원회 활동이 정부와는 독립적인 기관으로 움직이는 곳이라는 것을 말씀하셨지요.
반면 이명박 정부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축소와 폐지를 지금도 계속 시도하고 있고요. 무엇보다 현 정부에서는 인권위원회의 시정권고에 대해 절반 이상이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딱 깨놓고 말해서 개무시한다는 말이겠죠 - 작성자註)
6. 대통령 기록물 관리
참여정부에서는 전체 825만 여건의 대통령 기록물을 이관했다고 합니다. 역대 정부가 총 33만여건이라고 하는데요. 그 중에서 국민의 정부가 22만건이라고 하네요. 노무현 대통령님께서는 철저하게 기록을 남기셨고요.
퇴임 후 825만 여건의 대통령 기록물들 중 기밀을 요구하지 않는 문건에 대해 또 다시 분류하기 위해 대통령 기록물의 열람이 꼭 필요했다고 합니다. 이 일은 이명박 정부가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대통령 자신의 재임 기록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 현 정부의 처사에 분한 마음이 들지만 무엇보다 그 일을 하시려고 했던 분이 안 계신 점에 많이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7. 법치주의를 넘어서 - 타협과 통합의 법치주의
윗 글에서 언급한 대로 1단계 법치주의를 형식적, 시민적 법치주의라 하고, 2단계 법치주의를 실질적, 사회적 법치주의라고 한다면, 3단계 법치주의는 타협과 통합의 법치주의라고 말할 수 있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새로운 시대의 맏형이 되고 싶었으나 구시대의 막내로 머물게 되었다는 표현을 하셨는데, 그 이유는 타협과 통합의 민주주의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선거제도를 개혁해야만 그러한 민주주의에 근접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참여정부 때 노무현 대통령님의 대연정 제안에 대해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타협과 통합의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리고 만약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이 이명박 정부에서 이루어 진다면 상당한 업적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은 권역별 정당비례대표제나 혹은 또 다른 선거제도를 적용하더라도 한 지역에 한 정당의 국회의원들만 선출되는 것을 극복하려고 하셨답니다.
영남에서도 비한나라당이 30% 수준의 의석이 나와야 정치가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질의응답 및 마무리
질의응답은 몇 분이 하셨는데요. 기억에 남는 두 분의 질문과 답변으로 후기를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미국 뉴저지에서 오신 한 분은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왜 언덕 위에서 몸을 던지셨나?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질문을 던지셨는데요. 문재인 변호사님은 차분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가지 뜻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속죄의 의미고, 또 하나는 항의의 의미다. 속죄의 의미란 '나를 버리셔야 합니다' 라고 표현하신 것과 같은 것이고, 항의의 의미라는 것은 자존, 존엄을 지켰다는 것이고, 더이상 굴욕을 당하지 않겠다는 표현이다."
또 한 분은 "문재인 실장님은 어떻게 그렇게 냉정하신가? 노무현 대통령님 서거 후 장례기간과 영결식장에서 그분(이명박)을 보고 어떻게 분노하지 않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셨는데요. 이번에도 깊이있는 답변을 하시더군요.
"나는 냉정한 사람이 아니다. 나도 분노한다. 내가 비서실장을 했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저까지 덩달아 분노를 표출한다면 대통령 빈소부터 시작해서 장례를 치를 수 없었다. 누구나 분노하지만 분노만 가지고는 장례를 치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 개인적으로는 문재인 변호사님을 지난 노짱님 안장식 때 봉하마을에서 뵌 적이 있는데요. 옆으로 지나치는 그분의 손을 꼭 만질 수 있었습니다. 제 느낌은 이 분은 세속에 속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마치 신선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초월해 있는 분처럼 느껴졌습니다.
거의 인생 전부와 같은 친구의 죽음 앞에서 사실 같이 따라 죽고 싶은 심정도 들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분의 눈빛과 표정 속에는 끓어 오르는 분노보다는 소중한 '친구'를 떠나 보내야만 한다는 아쉬움만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후 문재인 변호사님의 말씀과 ‘친구’의 소중함과 그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직접 행동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좌절하고 낙담하는 많은 분들에게 그래도 살아갈만하다는 희망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후기를 쓰는 이 지면을 빌어 인사드립니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 변호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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