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폐기해야 한다
“나는 지난 5년 동안 내내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측의 6자회담에서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과 싸워왔고, 국제무대에 나가서 북측 입장을 변호해 왔습니다.”
2007년 10월 3일 남북정상회담 오전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대화록 내용을 폭로해 국가기밀을 누설한 정문헌, 서상기 의원의 심리상태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국정원이 만든 대화록 발췌본에서 이 발언을 본 순간 그들은 격분했다. 놀라서 손발이 덜덜 떨렸다. 이 발언이 조작된 게 아니라 대화록 전문에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박근혜 후보 선대본의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국가기밀 누설 범죄가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2012년 12월 14일 오후 부산 서면 유세에서 이 발언을 그대로 낭독한 것이다. 오로지 ‘대한민국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런 짓을 했다는 주장이 생거짓말인 건 아니라고 본다. “북핵문제와 관련해서 ‘5년 내내 북측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과 싸웠고 국제무대에 나가서 북측 입장을 변호’했다니, 대한민국 대통령이 이럴 수가 있는가! 이런 ‘종북반미’ 행위를 어떻게 용납할 수 있다는 말인가! 여기 명백한 증거가 있다. 국민에게 진실을 알려야 한다!” 그들은 이렇게 마음먹었던 것이다.
북은 세 차례나 지하 핵폭발 실험을 했다. 2006년 10월이 첫 번째, 2009년 5월이 두 번째, 그리고 2013년 2월이 세 번째였다. 북은 핵폭탄 개발에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장거리 미사일과 인공위성 발사 시험도 수시로 하고 있다. 만약 핵폭탄을 소형화하고 정밀하게 조종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면 북은 그것으로 미국 본토를 공격할 능력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행위가 1991년 12월 31일 남과 북이 합의해 발표한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공동선언>을 비롯해 그동안 남북 당국이 했던 모든 비핵화 합의에 위배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북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은 금년 1월 그 <공동선언>은 무효라고 주장함으로써 그런 비판에 공세적으로 대응했다.
우리 국민들은 대부분 북핵을 반드시 폐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통일하면 우리 것이 될 테니 상관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동조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일본의 재무장을 경계하는 사람들은 북의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시험이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켜 일본 우익의 정치적 득세와 재무장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강조한다. 타당한 지적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남이든 북이든 스스로 핵무기를 만들지 말아야 하고 남의 핵무기를 영토 안에 들여오지도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하지만 핵 무장에 반대하고 북의 핵 개발을 비난한다고 해서 북핵을 폐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유엔에 가입한 주권국가이다. 백만 명이 훨씬 넘는 상비군과 각종 중화기를 보유하고 있다. 북 스스로 핵을 폐기하지 않는다면, 전쟁을 하지 않고는 남이 그 핵무기를 없앨 방법이 없다. 하지만 그 문제가 아무리 심각한 것이라고 해도 전쟁을 할 수는 없다. 핵 보유를 명분으로 북을 선제공격하는 것은 국제법상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핵무기를 개발한 나라가 북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제일 많이 가진 나라는 미국과 러시아, 중국 같은 강대국이다. 국제법상 문제가 없다고 해도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 한국전쟁 교전당사국들이 모두 6.25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강한 화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다시 전면전을 벌였다가는 우리 민족 전체가 아주 망하고 말 것이다.
전쟁을 하지 않고 핵을 폐기하려면 협상을 해야 한다. 다른 방법은 없다. 만약 북이 내건 핵 폐기의 조건이 합리적이라면 그것을 수용해야 한다. 북의 요구가 지나치거나 사리에 맞지 않는다면 끈질기게 협상해서 누그러뜨려야 한다. 실제로 우리는 오랜 기간 그런 노력을 해 왔다. 북과 직접 대화도 했고 6자회담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측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과 싸워왔고, 국제무대에 나가서 북측 입장을 변호해 왔다”고 한 것은 그런 뜻이다. 미국 정부가 북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해 핵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는 말이다. 알고 보면, 뭐 그리 흥분할 일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북이 내건 핵 폐기의 조건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자. 북핵은 반드시 폐기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안전과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북을 위해서도 그렇게 하는 게 좋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북이 6자회담에서 일관되게 견지해 온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객관적으로 옳은 해결책이고, 또 북 역시 미국이 그 조건을 받아들이면 핵을 폐기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더 들어볼 필요도 없다면서 화부터 벌컥 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유아무개는 ‘반미 종북주의자’임에 틀림없어!”라면서. 그런 분들에게는 이렇게 대꾸할 수밖에 없다. “그대, 참으로 어리석도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해설 6회째인 오늘 글에서, 나는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히고자 한다.
북도 핵 폐기를 원한다
2007 남북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상당히 긴 시간 북핵 관련 대화를 나누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오전 회담 기본입장 발언 도중에, 노무현 대통령의 동의를 구한 후, 북측 협상단장으로 6자회담을 마치고 막 돌아온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을 회담장에 불렀다. 6자회담은 남북 두 당사자와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 4강의 외교 당국자들이 북의 핵문제를 해결책을 논의하는 협상단위이다. 중국이 주선해서 만든 회담인 만큼 2003년 8월 제1차 회담부터 2007년 9월 제6차 2단계 회담까지 모두 베이징에서 열렸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6년 동안에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남북관계가 나빠지면 6자회담은 동력을 잃게 되어 있다. 미국 정부는 문제를 꼭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목이 마른 건 남과 북이다. 목마른 사람들끼리 싸우는데 미국이 적극 나설 이유가 없다.
김계관 단장이 두 정상에게 결과를 보고한 그 회담은, 2007년 9월 27일부터 30일까지의 나흘 동안 열린 제6차 2단계 회담이었다. 남측 협상단장은 천영우 외교부 차관보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10월 2일 오후 평양으로 갔기 때문에 하루 전 끝난 회의 결과를 전문(電文)으로만 받았을 뿐 아직 천영우 협상단장의 보고를 직접 받지 않은 상황이었다. 북은 마지막이 된 이 회담을 앞두고 8월 중순과 9월 초에 미국 측과 쌍무접촉을 했다. 6자회담이 진행되는 도중에도 문제가 생기면 미국 측과 따로 회담을 했다. 김계관 수석대표는 그런 경과를 설명한 후 회담 결과를 다음과 같이 요약 보고했다. 그의 보고는 핵문제에 대한 북의 기본입장과 해결방안을 언론 보도를 통해서 보는 것보다 훨씬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근본문제에 대해서는 다 합의를 했습니다…우리가 할 것은 무엇인가? 2007년 12월 31일까지 연내에 신고와 무력화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날짜 줄 용의가 있다. 그렇게 12월 31일까지 다 하겠다. 그 대신에 미국도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적성국 문건 해제를 기본으로 하는, 우리를 적으로 규정한 제도적인 법률적인 장치들을 해제하라… 말대 말도 못 하갔다 하면 행동대 행동은 언제 하갔나. 이거야 말대 말인데 다 합의한 건데. 제네바에서 합의한 거 그거 이행하자고 손을 뗐지 않은가… 2.13합의문이 있기 때문에 상기하면서 우리가 행동하는 데 병행하여 제네바에서 합의한 선에서 한다… 그렇게 해 가지고 합의문을 만들었는데.”
6자회담 제6차 2단계 회담은 합의문을 만드는 등 나름의 성과를 냈다. 김계관 단장의 보고에서 드러난 북의 기본입장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핵의 신고와 무력화를 즉각 할 의향이 있다. 미국도 북을 테러지원국 명단과 적대국가 명단에서 삭제하라.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 대 행동으로 제네바 합의를 실행하자.” 이것은 미국이 북을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증하면 핵을 폐기하겠다는 말이다. 핵무기 개발이 ‘자위용’이라는 북의 평소 주장 그대로다. 북의 이러한 기본입장은 핵 신고 대상에 대한 문제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김계관 단장은 이렇게 보고했다.
“내용적으로 볼 때 신고에서는 우리가 핵계획, 핵물질, 핵시설 다 신고합니다. 그러나 핵물질 신고에서는 무기화된 정형은 신고 안합니다. 왜? 미국하고 우리하고는 교전상황에 있기 때문에 적대상황에 있는 미국에다가 무기 상황을 신고하는 것이 어디 있갔는가. 우리 안한다… 핵계획과 관련해서는 모든 핵계획인데 농축우라늄 문제가 해결되는 차제로 한다… 무력화는…미국이 주무가 되고 거기에 러시아, 중국 전문가들 초청해서 영변에 가서 그뒤 요구된 오갔다는 거 다 보여주고, 사진 다 찍게 하고, 설계도면까지 다 보여줘서 연내 가능한 대상이 어딘가 범위가 어떻게 되겠는가를 다 논의하였고 그거에 따라서 합의를 하였습니다.”
두 정상은 보고를 받은 뒤 두 가지에 대해 공감을 나누었다. 첫째, 미국 측이 남북정상회담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자꾸 언론보도를 늦추려고 하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이는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에 직접 영향을 주는 합의는 하지 않겠다는 데 두 정상이 공감했음을 의미한다. 둘째 북핵문제를 6자회담 틀에서 풀어나가자는 기존의 합의를 재확인했다. 여기에는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런데 김계관 단장이 보고를 마치고 나가기 전에 핵문제에 대한 북의 기본입장을 다시 정리해서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걸 모를 리 없으니 분명 노무현 대통령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지금 우리하고 미국과 차이점이 뭔가 하면. 우리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 때문에 생긴 거니까 적대시 정책을 바꿔라 이겁니다. 그런데 그 문제에서 아직도 행동은 안하고 말로만 바꾼다. 바꾼다. 좋은 말 하다가 어떤 때 뒤집어서 거친 말 또 했다 말았다. 이게 첫째 문제점이고. 둘째는 우리는 전 조선반도 비핵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북반부 비핵화, 우리한테서 핵무기 빼앗아 내면 비핵화 다 되었다고 생각하는 게 차이점입니다. 세 번째는 우리는 평화적 핵 활동은 해야 되겠다는 거고 미국은 핵이라고 붙은 건 다 안 된다는 겁니다. 이걸 조정해 나가는 과정에서 많이 꺾이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어떤 태도 변화가 있는가를 예의 주시하면서 대응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6자 틀걸이 내에서 풀며, 6자 틀걸이가 아주 좋다. 이런 데서는 점점 일맥상통하는 점을 갖고 있습니다.”
북의 기본입장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폐기, 한반도 전체 비핵화, 그리고 평화적 핵 활동 보장, 이 세 가지를 미국이 행동으로 보장하면 6자회담 합의를 통해 북도 행동으로 핵을 폐기하겠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북이 최종적으로 원하는 것은 한반도에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체제의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개발한 핵무기는 이 목표를 이루는 최종단계에서, 다시 말하면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해 북과 미국이 ‘교전상태’를 완전히 벗어나는 시점에서 폐기하겠다는 것이 현재 북의 입장이다. “핵물질 신고에서는 무기화된 정형은 신고 안합니다. 왜? 미국하고 우리하고는 교전상황에 있기 때문에 적대상황에 있는 미국에다가 무기 상황을 신고하는 것이 어디 있갔는가. 우리 안한다.” 김계관 단장은 이 말은 바로 그런 뜻이다.
제네바합의를 되살려야 한다
북핵을 폐기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지금 북은 국제사회에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북의 세 차례 핵무기 실험 성패 여부에 대해서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있다. 지금으로서는 ‘짝퉁’ 수준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해 두자. 하지만 이 ‘짝퉁’이 ‘명품’으로 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나는 앞에서 핵문제 해결에 대한 북의 기본입장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북이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 억지를 부린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북의 논리가 전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최소한 일리는 있다고 본다. 게다가 북이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역사적 근거도 있다. 1994년의 <제네바합의>가 그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폐쇄적인 국가로 인식되어 있다. 맞다. 북은 그런 나라이다. 그런데 북 스스로 좋아서 폐쇄한 것이 아니다. 구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지고 중국이 본격적인 경제개혁에 나섰던 1990년대 초 김일성 주석은 달라진 국제정세에 나름대로 유연하게 대응하려고 했다. 북방외교를 모토로 내건 노태우 대통령이 그런 변화를 추동하기 위해 선제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노태우 씨는 인기 없는 전직 대통령이다. 그냥 인기가 없는 게 아니라 아예 존재감이 없을 정도다. 좋아하는 사람도 드물지만 미워하는 사람도 적다. 그러나 비록 군사반란과 부정부패를 저질러 유죄선고를 받기는 했지만, 그는 1971년 대통령선거 이후 처음으로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으로서 한 일도 있다. 무엇보다 그는 냉전체제 붕괴라는 세계사의 대전환을 맞아 ‘북방외교’의 기치를 들고 옛 사회주의권의 러시아, 중국, 동유럽 국가들과 수교함으로써 한국 기업의 활동범위와 해외시장을 크게 확장했다.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킬 기회가 왔다고 판단해 북과 적극 대화하고 협력했다. 그는 새누리당과 그 전신인 한나라당, 신한국당, 민자당, 민정당 소속이었던 어느 대통령보다 더 훌륭한 대북정책을 폈다. 다들 잊어버리고 있지만, 이것은 간과해서는 안 될 정치적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노태우 대통령은 취임 반년이 채 되지 않았던 1988년 7월 7일 <민족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이른바 ‘7.7선언’이다. 여기서 남북 동포의 상호교류와 해외동포의 남북 자유왕래, 이산가족 생사 확인, 남북교역 문호개방을 공세적으로 제안했다. 우리의 우방국이 북과 비군사 물자를 교역하는 것을 용인하고 국제무대에서 남북 대결외교 종결하며 북한이 미국, 일본과 관계를 개선하는 데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북이 즉각 화답하지는 않았지만, 노태우 정부는 북에 대한 비방방송을 일방적으로 중단하는 등 화해를 위한 전향적 조처를 취했다.
그런데 북은 <7.7선언>에 화답한 게 아니라 당시로서는 엉뚱해 보이는 문제를 들고 나왔다. 1990년 5월, 북은 <조선반도의 평화를 위한 군축방안>을 발표해 한반도 전체를 비핵지대화하자고 제안했다. 접근 가능성을 본 남북 당국은 1990년 9월부터 고위급회담을 시작했다. 북이 1991년 7월 남북 당사자들이 한반도를 비핵화하자는 방안을 내놓자 노태우 대통령은 즉각 화답했다. 9월 24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주한미군의 핵무기 철수 문제를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이다. 불과 사흘 후 미국 정부가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철수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한미 양국 정부가 사전에 조율한 흔적이 역력했다. 정전협정 50주년을 앞둔 한반도에 변화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1991년 11월 8일 노태우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구축을 위한 선언>을 발표했다. “대한민국은 핵무기를 제조·보유·저장·배치·사용하지 않으며, 국내의 핵시설과 핵물질을 국제사찰에 철저히 공개하고 핵연료 재처리 및 핵 확장 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면서 북에 상응하는 조치를 요구했다. 남북관계는 급진전을 이루었다. 남과 북의 총리들은 1991년 12월 13일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했다. 1년 넘게 대화하고 협상한 결실이었다. <남북기본합의서>의 의미와 역사적 중요성에 대해서는 나중 다른 글에서 상세히 살펴볼 것이다. 여기서는 이 중요한 합의가 나온 배경에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남북 당국자들의 공감이 작용했다는 점만 지적해 둔다.
그런데 북미관계가 악화되었다. 예전에는 북핵이 아니라 주한미군이 보유한 소형 핵무기가 문제였다. 북은 1985년 핵확산금지협약(NPT)에 가입했고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를 선제적으로 주창했다. 그런데 1989년 미국 정찰위성이 영변에 플루토늄 재처리시설이 있다는 사실을 탐지해냈다. 미국이 국제원자력기구를 통해 이것을 문제 삼고 나서자 북은 1993년 NPT를 탈퇴해 버렸다. 미국의 군사공격 가능성이 거론되고 북이 반발하면서 북미관계가 험악해졌다. 남북관계도 돌발상황에 봉착했다. 노태우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크게 진전시킨 토대 위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해 날까지 받았다. 그런데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주석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했다. 북은 김정일에게 권력을 승계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은 어쩐 일인지 갑자기 대북강경책을 들고 나와 남북관계를 냉탕에 집어넣어 버렸다. 상황은 한반도 전쟁위기설이 나도는 데까지 나아갔다.
이때 미국 대통령을 지낸 지미 카터가 나섰다. 그는 개인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했고 워싱턴으로 달려가 빌 클린턴 대통령을 설득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클린턴 대통령이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94년 10월 2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합중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북한과 미국간에 핵무기 개발에 관한 특별계약>을 맺었다. 이것이 세칭 <제네바합의>라는 것이다. 북이 남을 젖혀두고 미국과 직거래를 하는 소위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관철한 것이다. <제네바합의>에서 북미 양측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해 두었다. 다음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조항의 순서와 표현을 바꾼, <제네바합의>의 핵심내용이다.
“북은 2003년까지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흑연감속로를 경수로로 바꾸고, 이를 위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원자로 운행을 중단한다. 또한 한반도비핵화선언을 시행하는 데 필요한 조처를 시작하며 핵확산방지협약에 잔류한다. 동결되지 않은 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의 감시를 받아들인다. 이미 사용한 핵연료봉은 재처리하지 않으며, 일단 저장한 후 폐기한다. 여기에 상응하여 미국은 북미관계를 정치적 경제적으로 완전히 정상화하고 북을 위협하거나 북에 핵무기를 쓰지 않기로 공개 약속한다. 또한 경수로를 완성해 전력을 생산하는 시점까지 난방과 전력생산에 쓸 중유를 북에 제공한다.”
북이 원한 것은 북미관계 정상화와 평화보장이었다. 미국이 원한 것은 북이 핵무기를 개발할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는 것이었다. 양측은 진지하게 협상한 끝에 각자 원하는 것을 얻었다. 무력을 쓰지 않고 협상으로 갈등을 해결한 모범사례라고 할 수 있다. 경수로와 중유를 제공하는 것은, 기존 원전 운행을 중단하면 북이 에너지 부족 사태에 빠지는 만큼, 그 손실을 ‘실비로 보상’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부속합의에 지나지 않았다. 북은 합의사항을 준수했다. 미국은 해마다 중유 50만 톤을 북에 제공했다. 한국은 미국, 일본과 함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설립해 경수로 원자로를 짓는 일에 착수했다. 이 합의가 제대로 지켜졌다면, 북핵문제는 그때 완전히 해결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2001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일이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는 소위 ‘ABC(Anything But Clinton) 정책’을 추진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빌 클린턴 대통령이 했던 모든 정책을 부정하고 반대로만 하려 한 것이다. 북미관계가 꼬일 수밖에 없었다. 부시 대통령과 미국의 ‘네오콘’들은 북을 ‘불량국가’로 규정했다. 2001년 9.11테러가 난 후에는 북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해 대외교역과 외교활동을 봉쇄했다. 부시 행정부가 제네바 합의를 이행할 생각이 없다고 판단한 북은 2002년 들어 원심분리 방식의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공개해 버렸다. 다시 북핵 위기가 조성되었다. 미국은 경수로 건설을 막았다. 중유 지원도 중단해 버렸다. <제네바합의>가 사실상 파기되었다고 판단한 북은 NPT를 다시 탈퇴했다. 멈추었던 원자로를 재가동했다.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해서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되찾아 왔던 김대중 대통령도 막 나가는 부시 대통령을 말릴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2003년 2월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했다. 북핵문제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기본전략은 <제네바합의>를 살려냄으로써 한반도 정세에 대한 우리의 주도권을 되찾아오는 것이었다. 따라서 북의 핵시설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검토한 부시 대통령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들은 바로는,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북의 핵시설을 공격하는 군사행동을 할 경우 미국 공군은 국군의 협력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통보했다고 한다. 그 무렵 나는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점심을 먹은 일이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생사가 걸린 일인데도, 문제는 북미 양국이 일으키고 정작 대한민국 대통령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현실에 대해 그는 분노를 터뜨렸다.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한 미국이 전쟁을 할 수는 없다. 나는 절대 동의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반미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국익을 크게 해치는 미국의 정책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반대했다. 미국의 이라크 파병 요구를 받아들인 것도 동기는 같았다. 이라크 전후복구 사업에 한국 기업이 참여해 돈을 버는 것은 아무런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이라크 전쟁은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있고 동기도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북미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가운데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풀어나가려면 어느 정도라도 부시 대통령의 이해와 협조를 받아야 했다. ‘친미주의자’가 아니어도 대한민국 대통령은 어느 정도는 ‘친미’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큰 국익’을 위해서 도덕적 비난을 받을 각오를 하고 비교적 작은 규모의 전투병을 비전투임무를 주어서 이라크로 보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라크 파병은 부시 대통령의 ‘심기 관리’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북핵문제가 중대한 현안으로 남은 경위이다. 북핵문제는 남북 사이에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 북미간에서 생긴 문제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북미 양측이 각자 자기가 원하는 것을 받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어야 한다. 북은 그렇게 할 의사가 있다. 중국이 6자회담을 주선하는 데 성공한 덕분에 2003년 북핵위기는 한 고비를 넘겼지만 북미간의 대립은 지속되었다. 북은 6자회담에서 언제나 <제네바합의>대로 하자고 주장해 왔다. 노무현 대통령도 <제네바합의>를 살리는 것이 올바른 해결책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이었다. 북이 원하는 북미관계 정상화와 평화보장이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미국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북의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을 폐기하는 것이다. 공식적으로 그렇다. 만약 이것이 진심이라면, 다른 목적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제네바합의로 돌아가는 것이 옳다. 미국 행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된다. 다른 걸림돌은 없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6자회담에서의 북측의 입장을 가지고 5년 내내 미국과 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표현이 그래서 그렇지, 내용을 말하면 <제네바합의>를 살려내자고 미국을 집요하게 설득했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종북’이나 ‘반미’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런 점에서 오바마 대통령, 정말 실망이다.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 한 일이 없다.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해서 그런 것 아닌가 싶다. 하지만 누굴 탓하랴.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 정부에게 한반도 정세는 미국보다 우리 책임임을 누누이 강조하고 미국이 대한민국 정부의 동의 없이 독자적 군사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말리면서 평화를 유지했다. 사실 지구상에서 우리만큼 북한을 잘 아는 곳이 또 어디 있겠는가? 오바마 대통령은 우방인 대한민국 정부의 대북정책을 존중하는 입장이었는데, 하필이면 그때 대통령이 이명박이었다. 조금 더 지켜보면 알게 될 터이지만, 나는 박근혜 대통령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을 시작해야
다시 말하지만, 북미 양국이 <제네바합의>를 완벽하게 이행했다면 북이 세 차례나 핵실험을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네바합의는 파기되었고 북은 ‘명품’이든 ‘짝퉁’이든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네바합의>를 살려내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할 수 없다.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사태가 온 것이다. 가래로라도 막을 수만 있다면 좋은 일이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폐기, 한반도 전체 비핵화, 그리고 평화적 핵 활동 보장.” 이 세 가지를 행동으로 보장하면 6자회담 합의를 통해 핵을 폐기하겠다는 것이 북의 입장은 “북미관계 정상화, 경수로 지원, 북에 대한 미국의 핵 위협 제거”라는 제네바합의 내용과 그대로 일치한다. 그런데 그 사이에 <제네바합의>를 되살리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겼다. 북이 핵폭탄을 개발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것은 새로운 해결책이 필요한 문제이다. 김계관 6자회담 협상단장은 교전 상대방에게 자기의 무기 상황을 신고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미국이 북의 ‘교전 상대방’이 아니게 만들어야 한다. 단순한 북미관계 정상화로는 부족하게 되었다. 김계관 단장은 미국이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해 북의 체제안전을 더욱 확실하게 보장하지 않으면 이미 개발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따라서 북핵문제의 완전한 해결과 한반도비핵화를 위해서는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북이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그 길 말고는 해결책이 없다. <제네바합의>가 호미라면 <평화협정>은 가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북은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북의 태도를 이해하려면 정전협정의 성격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1953년 7월 27일 맺어진 한국전쟁 정전협정의 정식 명칭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다. 국제연합군 총사령관 클라크, 북한군 최고 사령관 김일성,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가 협정문에 서명했다. 세계 역사에서 정전협정이 이토록 장기간 유지된 사례는 단 하나도 없다.
정전협정문은 서언과 본문 5조 36항, 부록 11조 26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언에는 협정의 목적과 성격이 나온다. 본문 5개조는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정전의 구체적 조치, 전쟁포로 처리, 정부에 대한 건의 사항 등을 담고 있다. 정전협정의 목적과 성격을 서언은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 지원군 사령관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하기(下記)의 서명자들은 쌍방에 막대한 고통과 유혈을 초래한 한국충돌을 정지시키기 위하여서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일체 무장행동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을 확립할 목적으로 하기(下記)조항에 기재된 정전조건과 규정을 접수하며 또 그 제약과 통제를 받는데 각자 공동 상호 동의한다. 이 조건과 규정들의 의도는 순전히 군사적 성질에 속하는 것이며, 이는 오직 한국에서의 교전 쌍방에만 적용한다.”
그렇다. 정전협정은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적대행위와 무장행동의 정지’를 보장하기 위한 ‘군사적 조처’를 담은 것이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잠시 멈추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조건과 규정들의 의도는 순전히 군사적 성질에 속하는 것’이라고 정전협정의 의미를 제한한 것이다. 서명 당사자는 군사적 행위를 지휘한 군사령관들이었다. 김일성이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 아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라는 직책을 병기했지만 실제적인 의미는 없다. 정전협정에 서명한 군사령관들은 관계 각국 정부에 대한 건의사항을 다음과 같이 본문 제4조에 넣었다.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하여 쌍방 군사령관은 쌍방의 관계 각국 정부에 정전협정이 조인되고 효력을 발생한 후 삼개월내에 각기 대표를 파견하여 쌍방의 한 급 높은 정치회의를 소집하고 한국으로부터의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 및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문제들을 협의할 것을 이에 건의한다.”
전쟁을 끝내는 일은 전투행위를 지휘하는 군사령관들이 할 수 없다. 평화를 이루는 것은 정치적인 과제이다. 그러나 군사령관들의 건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한민국이 유엔의 승인을 받은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임을 내세우면서 한국군사령관이 정전협정에 서명하지 못하게 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북과 정치회의를 할 생각이 없었다. 남북이 대표를 보내 정치회의를 했다 하더라도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와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 문제들을 협의”해서 무슨 성과를 냈을 것 같지 않다. 정전협정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정치협상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죽산 조봉암 선생은 그런 것을 하자고 주장했다가 간첩으로 몰려 교수형을 당했다. 지금도 그렇게 주장하려면 ‘종북’ ‘빨갱이’라는 비난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이대로 가면 정전협정 체결 1백주년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정전협정 체제가 이토록 오래 지속된 것은 한국전쟁이 무승부로 끝났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이 승부를 내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베트남전쟁 이전까지는, 성조기를 들고 간 전쟁에서 미군이 이기지 못한 전쟁이 한국전쟁 하나밖에 없었다. 북은 7월 27일을 ‘전승일’로 기념하지만 허황한 선동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네가 전면전을 일으켜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만들었지만, 원래 있었던 38선 근처에 휴전선이라는 새로운 경계선만 만들었을 뿐 얻은 것이 전혀 없는 전쟁이었다. 이기기는 뭘 이겼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또 다시 전쟁을 벌일 수 없다면, 이것이 무승부로 끝난 전쟁임을 인정하고 앞으로 다시는 전쟁의 비극이 벌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양쪽 모두에게 바람직한 일이다.
2007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평화협정 문제를 제기했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맞장구를 쳐주지 않아서 심도 있는 논의를 하지는 못했다. 다음은 노무현 대통령이 오전 회담에서 기본입장을 발표하면서 한 발언이다.
“남북 주도하에 통일지향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이며 이를 위해서는 북미관계 정상화와 남북 군사적 신뢰구축을 통한 냉전체제 종식과 핵문제 해결이라는 두 가지 큰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전쟁이 종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55년간 지속되는 현 상황은 청산되어야 하며 이런 면에서 북미관계가 정상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김위원장께서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문만 열어놓는다면 미국이 이에 상응한 관계개선 조치를 속도를 내서 취하도록 계속 재촉할 것입니다. 나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위원장과 함께 우리 민족의 장래를 위해 남과 북이 주도해서 평화체제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다는 것을 전세계에 공표하게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한반도 평화체제 포럼을 출발시키는 것이 필요하며, 협상 개시에 도움이 된다면 부시 대통령이 제안한 방식대로 3국 정상이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이 먼저 평화체제 협상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북미관계를 잘 풀어야 하기 때문에 부시 대통령이 주도하는 모양새를 갖춰 남북미 3국 정상회담을 만들 수도 있다고 했다. 3국 정상회담 문제는 부시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사이에 이야기가 오간 흔적이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발언을 보면, 그도 그 이야기를 이미 듣고 회담장에 온 것 같다. 그렇지만 그의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되면 나쁠 것 없고, 안 되도 그만이고. 뭐, 그런 분위기였다. 아마도 부시 대통령에 대한 불신과 불만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음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응답이다.
“얼마 전에 부시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화할 때 종전선언 문제를 언급했다는 말이 지금 돌고 있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주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종전을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지만 그것이 하나의 시작으로는 될 수 있다고 보면 어떻겠는가 나는 생각합니다. 조선전쟁에 관련 있는 3자나 4자들이 개성이나 금강산 같은 데서 분계선 가까운 곳에서 모여 전쟁이 끝나는 것을 공동으로 선포한다면 평화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될 수 있다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께서 관심이 있다면 부시 대통령 하고 미국 사람들과 사업해서 좀 성사시켜 보는것도 나쁘지 않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그런 조건이 될 때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완전히 바꾸는 게 어떻겠는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관심 있으면 해 보시라. 되면 나쁘지 않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런 정도로 가볍게 받은 다음, 우리의 NLL과 북이 주장하는 해상군사경계선 사이에 공동어로구역을 만들어 남북의 군사적 신뢰를 도모하는 문제로 화제를 끌고 가버렸다. 노무현 대통령은 오전회담뿐만 아니라 오후회담에서도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지 않았다. 더 이야기해 봐야 진도를 나가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아쉬운 일이다. 그때 남북 두 당사자가, 우리부터 평화협정 체결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합의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진심으로 평화를 원한다면 결단해야 한다
지난 주 글에서, 나는 독일식 ‘합의통일’을 원한다면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남북의 교류와 경제협력을 확대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북은 아직 소위 ‘권력의 3대 세습’을 완료하지 못했다. 김정은 체제는 ‘유훈통치체제’이다. 이 체제가 들어선 것은 북의 권력집단이 현상유지 노선을 채택했음을 의미한다. 북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7 남북정상회담에서 밝힌 기본입장을 큰 틀에서 유지하는 가운데, 국제정세 변화와 경제적 난관 때문에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경우에만 부분적 유연성을 보일 것이다.
북이 개성공단을 살려내기 위한 실무협상에서 융통성을 보였다. 애초에 군사정치 문제를 들어 통행제한을 한 것이 잘못이었다. 늦은 감이 있지만 태도를 바꾼 것은 큰 다행이다. 추석맞이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협의하는 적십자회담에도 응했다. 당연히 해야 한다. 그래야 남도 명분 있게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다. 금강산관광을 되살리기 위한 협의를 먼저 제안했다. 박왕자씨 사망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화끈하게 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받아들일 것이다. 원래 북의 군인이 실수한 사건인 만큼, 북 당국이 처음부터 그것을 인정하고 대책을 강구했더라면 이명박 대통령도 그런 식으로 금강산관광을 중단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남도 북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하지만 북도 그래야 마땅하다.
개성공단 재가동,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관광 재개는 모두 좋은 일이다. 그러나 새로울 것은 없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때 하다가 이명박 대통령 때 중단된 것을 원위치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북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것은 ‘유훈통치’의 범위 안에서 유연성을 보인 것일 뿐이다. 가장 큰 의미가 있는 것은 개성공단 재가동이다. 개성공단은 남과 북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것을 영구 폐쇄하면 남과 북 모두 만만치 않은 경제적 타격을 받는다. 그래서 양쪽 모두 무작정 사태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가지 못한 것이다.
개성공단을 폐쇄하면 그 자체도 타격이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이 남북관계 악화와 전쟁 분위기 조성으로 인해 대한민국 국가 브랜드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이다. 예전에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자기가 당선되기만 하면 종합주가지수 3,000이 되고 임기 중 5,000을 돌파할 것이라고 사기를 쳤던 적이 있다. 만약 그게 알고 친 사기가 아니라 진심이었다면 결코 남북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말 성공한 경제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계승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10.4공동선언>을 이행해 해주와 안변 등에 개성공단보다 몇 배 부가가치가 높은 공단을 만든다면 남북관계는 더욱 빠르게 진전될 것이다.
개성공단 재가동과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관광 재개는 좋은 일이지만 그것은 예전부터 있던 것을 복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가려면 남북 모두 ‘비상한 결단’을 해야 한다. 정치적 외교적 군사적 ‘밀당’으로는 북핵 폐기, 한반도 비핵화, 적대행위의 완전한 종식, 남북 주민의 자유로운 왕래, 경제협력사업의 비약적 확대를 이룰 수 없다. 이런 것들은 진심으로 원해야만 이룰 수 있다. 만약 북핵 폐기와 한반도 비핵화를 진심으로 바란다면, 전투행위의 일시적 중단을 합의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어 한국전쟁을 완전히 종식하고 한반도를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그렇다면 정전체제 60년 동안 우리의 내면을 지배해 왔던 낡은 고정관념과 결별해야 한다.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북을 억지를 부리는 불량국가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북의 권력자들도 이성이 있으며 합리적인 계산을 하고 합목적적인 전략을 구상하는 사람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결국 문제는 북미관계로 돌아간다. ‘미국이 문제’라고 한 노무현 대통령의 진단은 옳다. 6자회담의 틀에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에서부터 북한 핵의 폐기, 북한 에너지 문제 해결 등 모든 것을 일괄타결 방식으로 한꺼번에 해결하고, 북이 미국 일본과 수교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들어오는 것이 해결책이다. 이런 흐름 위에서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남북과 미국, 중국이 새로운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만이 북의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하고 한반도 평화와 남북의 공동번영을 여는 유일한 길이다. 다른 길은 없다.
문제는 북미관계이지만 그 문제를 풀어갈 당사자는 대한민국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좋은 사람일지는 모르지만 우리 문제를 해결해 줄 우리의 대통령은 아니다. 한반도 문제는 수많은 미국의 대외정책 이슈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이집트와 시리아 사태가 지구촌의 관심사가 된 요즘, 오바마 대통령이 받는 대외정책 보고서 목록 우선순위에는 북핵문제가 올라 있지도 않을 것이다. 3년 후에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북미관계를 풀기 위해서라도, 대한민국 정부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와 진솔하게 대화하면서 신뢰를 쌓아야 한다. 신뢰를 바탕으로 협상해야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이 합의했던 것을 실천할 수 있다. 먼저 그것을 실천해야 평화협정 체결과 더 진전된 협력 사업을 위한 협의를 시작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외교 당국자들은 미국과 중국 등 주변 국가들의 지도자들에게 북한을 설득하거나 압박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을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주권국가 정부의 대표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평생 동안 북과 싸우는 일을 한 사람들만 골라 국정원과 청와대 외교안보 라인에 배치함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은 자기 자신과 대한민국과 남북관계를 모두 해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대통령은 북과 싸우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협상하면서 북을 끌어나가는 대통령이다.
남재준 국정원장께, 이 글에 형편없이 저열한 댓글을 달지 않도록 직원들 단속 제대로 하시기를 부탁드린다. 이런 의견도 있으니 참고하시라고 대통령께 보고하는 것이야, 어찌 감히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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