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사설]고교 ‘불온도서’로까지 번진 역사 왜곡

우렛소리 2008. 12. 24. 20:17

[사설]고교 ‘불온도서’로까지 번진 역사 왜곡

 

 

 

경향신문 2008-12-24

 

 

 

뉴라이트의 좌편향 타령으로 시작된 역사교과서 갈등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가 널리 읽히는 근현대사 교양서를 ‘사회적 논란’을 이유로 도서관용 구입 도서 목록에서 제외해 교사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고 한다.

 

국방부의 시대착오적 불온서적처럼 고교에서도 ‘금서목록’이 나오는 참담한 상황이다. 역사교과서를 사실상 직권수정하고 강제교체한 역사 왜곡의 광풍이 일상으로까지 불어닥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 살리기를 내세우면서도 실제로 역사교과서에 집착했다. 지난 3월 재계가 돈을 대줘 ‘대안 교과서’란 이름으로 뉴라이트 책자가 나오면서 좌편향 타령의 본막이 올랐다.

 

4·19 혁명을 ‘데모’로 여기는 교육과학기술부는 뉴라이트 책자를 학교에 뿌리는 배달부로 시작해, 아예 좌파 교과서를 뜯어고치겠다며 출판사와 집필자들의 팔을 비트는 악역을 맡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부가 두렵지 않으냐”며 출판사를 몰아붙였다.

 

여기에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가세해 학교장들에게 교과서 교체를 강요하고, 막말하는 극우파의 역사 특강에 돈을 댔다. 문화관광체육부도 굿판에 뛰어들었다.

 

1948년 8월15일을 ‘전대미문의 혁명적 사건’이라며 이전과 이후를 단절적으로 보고, 민주(민주주의)보다 빵(경제성장)이 먼저라고 주장하는 ‘건국 60’ 책자를 학교에 뿌렸다. 굿판이 커지면서 급기야 학교장 지정 불온도서까지 등장한 것이다.

 

정부와 교육 당국은 뉴라이트가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훼멸(毁滅)하는 교과서 굿판에서 이젠 발을 빼야 한다. 그간 교육적으로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교과서 집필의 자율성과 역사 교육의 전문성,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무시되고 폄훼되고, 훼손됐다.

 

일선 고교에서 멀쩡한 교양서를 불온서적이라고 할 정도면, 우리의 교육과 민주주의는 분명 퇴행한 것이다. 그 책임은 치졸한 선동에 놀아난 정부의 몫이다.